음악과 함께

2024-10-17

김금희 수필가

차가 밀려 무료함을 이기고자 라디오를 켰더니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 나온다. 끊어질 듯 하다 다시 애절하게 이어지는게 묘하게 매력적이다.

이 곡이 무엇이더라. 밀려서 꿈쩍도 않는 차 안에서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해본다. ‘라벨의 볼레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라니. 이름만 들어도 웅장해지는 느낌이다. 간단히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어 보았다. 그뿐이다. 반복되는 테마음이 심층적으로 다가왔다.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수십 년 전에 영화관에서 숨죽이며 본 기억이 저만큼 있어서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가물가물한 내 기억이 맞는다면 젊은 남녀 무용수들과 뮤지션들의 삶을 조명했던 영화였다. 세계 곳곳에서 역동적인 예술혼을 불태우는 무용수들의 춤추는 장면들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 장면이 빠르게 스쳐간다. 스네어 드럼으로 연주하는 반복되는 주제음은 작품의 완성도를 향해 피땀을 쏟아붓는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을 뜻하는 것은 아닐런지.

중앙로에 있는 시니어 합창반 연습실의 계단을 오르는데 노랫소리가 들린다. 차가 막히는 바람에 시간에 늦었다. 발성 연습 겸 시작은 동요로 한다. 요즘은 가곡 ‘오빠생각’이다. 노래를 부르다보면 어느새 예전 열일곱 시절로 돌아가기도 한다. 언니는 결혼으로 오빠는 대학진학으로 서울로 가버려 졸지에 맏이가 된 나는 집안 청소를 하며 이 노래를 즐겨 흥얼거리곤 했었는데 세월이 많이 흘렀다.

육십을 넘기고 칠십을 넘기고 팔십을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는 단원들은 오빠라는 단어에 향수를 느끼며 어느덧 감수성이 풍부한 열일곱 어린 소녀의 마음이 돼 노래를 부른다. 우리의 감성까지 생각하는 지휘자의 선곡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금희야, 네가 그렇게 음악을 좋아 했었니?”

연년 전 합창단의 서울 공연에 서울 사는 친구가 와서 한 말이다. 그래 ‘노래 잘 했었니’가 아니라 ‘좋아 했었니’가 맞다. 어쩌다 성당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어느 자매님이 노래를 잘 하는 분이라고 해 잠깐 당황한 적이 있다. 합창 속에 함께 묻어가는 편인 나는 음악에 관심 있고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길 뿐인 것을….

성가대의 지휘자는 딸 같은 나이의 젊은 여성이다. 성가대에 처음 간 날 지붕을 뚫을 것 같은 그녀의 하이 소프라노가 십여 년 지난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세련된 외모에 멋있는 만큼 연습도 맛깔나게 시킨다.

“새 옷도 입고 멋지게 차려 나왔는데 정말 나를 안 볼 거에요?”

악보만 보며 지휘자를 안 보는 우리에게 유머러스한 멘트를 날리면서 때론 숨죽일 듯 고요하게 그러다 성난 파도처럼 휘몰아 쳐 나가기도 한다. 요즘은 하이든 곡을 연습하는데 소프라노와 테너와 베이스의 솔로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화음은 실로 놀라웠다. 음률에 취한 듯 지휘하는 모습이 일품이다. 함께하는 것이 바로 은총이리라.

30여 년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해 만난 시니어 합창반 활동은 새로운 인생 여정의 활력소가 되고 즐거움을 안겨 준다.

“노래를 할 때는 어떤가요?”

“행복해요.”

소녀들처럼 까르르 웃는 우리 따라 소년처럼 웃는 시니어 합창반 선생님의 얼굴도 행복해 보인다. 한곡 끝날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잘 하셨어요. 그래도 몇 군데 잘못이 있다는 것은 아시죠?”

한마디에 우리는 또 웃는다. 공연 준비 곡으로 ‘친구여’를 연습하는데 엔딩을 장식하는 색소폰 소리가 심금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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