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이탈리아에 비올라 다 감바라는 현악기가 있었다. 비올라 다 감바는 ‘다리의 비올라’라는 뜻인데, 첼로처럼 두 다리 사이에 끼고 연주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음량이 많고 풍부한 첼로가 외향적인 악기라면 소리는 작지만 비단결같이 섬세한 음색을 가지고 있는 비올라 다 감바는 내면적인 악기라고 할 수 있다.
비올라 다 감바는 궁전의 연회장과 귀족의 살롱에서 춤곡을 연주하거나 실내 소나타에서 즉흥적으로 화음을 받쳐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독주 악기로 자신 있게 자기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풍성한 음색을 자랑하는 첼로가 독주 악기로 화려하게 변신했지만 소박한 음색을 지닌 비올라 다 감바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오래된 악기가 다시 대중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비올라 다 감바를 비롯한 고악기의 숨겨진 매력을 찾아 나선 음악의 구도자들 때문이다.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에서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했던 조르디 사발과 그의 제자인 파올로 판돌포가 그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비올라 다 감바의 고풍스런 음색이 의외로 현대인의 감성에 잘 맞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악기의 매력을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서 왔다. 이중 판돌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비올라 다 감바로 연주함으로써 섬세한 음향과 깊은 공명으로 빚어낸 또 다른 얼굴의 바흐를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요즘 사람들이 비올라 다 감바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예전에는 단점으로 여겨졌던 이 악기의 소박한 음색 때문이 아닐까 싶다. 듣다 보면 그 소박함 속에 내면을 파고드는 심오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현대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올라 다 감바는 가장 현대적인 악기라 할 수 있다.
진회숙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