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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유혹의 계략
20. 뱀의 치명적 유혹
커다란 새장 안에 나뭇가지들을 장식하고, 새 한 마리를 넣었다. 작은 새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즈음, 뱀 한 마리를 다시 새장에 들어가게 했다. 자기 몸집보다 몇십 배나 큰 뱀이 미끄러져 들어오는 모습을 본 새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오갈 바를 몰라 소리를 지르기하고, 푸드덕거렸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가장 높은 가지 위로 올라갔다. 뱀은 즉각 새를 공격하지 않았다.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아래쪽에 꼼짝 않고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새는 윗가지에서 아래 가지로 조금씩 내려왔다. 심지어 호기심을 가지고 뱀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새가 코앞까지 가깝게 다가오자, 드디어 뱀은 입을 크게 쩍 벌렸다. 새는 스스로 뱀의 입안으로 들어갔고, 뱀은 간단하게 먹이를 삼켰다.
차창으로 빗방울이 흘러내렸다. 장례식장에 갈 때도 비가 내렸는데, 돌아오는 길에도 비가 내렸다. 장례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부모님 댁에서 거의 1주일을 머물러야 했다. 10일 만에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동안 내 존재에 대한 가치가 천지 차이로 변해버린 듯했다. 새와 뱀에 관한 한 과학적인 실험이 떠오른 것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장례식장에 가기 전, 나는 프랑스 작가와의 대담으로 명예와 자존심을 다쳐 1주일가량 두문불출했던 상태였다. 당시 내 최악의 모습을 보고 있다고 여겼고 처참했다. 그때 곡기를 끊었던 것도 나를 다시 회복시킬 자신이 있었기에 벌인 발악이었다. 장례식장에 갈 때만 해도, 내가 나를 믿던 시절의 나의 비참함을 나름 즐겼을 것이다. 본래의 나로 되돌릴 수 있다고 믿었다. 비참한 모습이었지만 확실하게 ‘나’라는 존재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라는 존재를 자각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도 나는 장례식 내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스스로 진저리가 쳐졌다. 아픈 아버지와 집안일을 돌보던 어머니가 실상 돌봄을 받아야 하는 건강상태임을 깨달았고, 비로소 나는 몰인정하고 무심하고 독선적인 자의 자만을 보았다. 내가 알던 나의 멋짐이나 명예가 오만이었고 부끄러움이었다. 여태 뭔가 착각을 하면서 산 것 같았다. 든든한 보호자이자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가 공급하던 영혼의 에너지가 끊겼는지 머리가 텅 빈 듯하고 먹먹했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는 지금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예 내 안의 ‘나’가 빠져나가 버린 듯 허망하고 허전했다.
“어디로 갔어?”
내가 무심코 작은 소리를 지른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기사가 자동차 백미러로 나를 살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상심한 아들의 돌발적인 언행이라고 느꼈는지 캐묻지 않았다.
“키우는 새들이 제대로 있는지 갑자기 생각나서요.”
나는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하는 자신에게 놀랐다. 아니 나는 이런 식으로 항상 나 자신을 방어하며 보호해왔을 것이다.
말을 하고 나자 비로소, 집에 남겨둔 ‘그리’와 ‘도리’가 떠올랐다. 방치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그대로 포기하면 아파트 안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내가 없으면 더 목숨을 이어갈 수 없는 존재들! 이런 존재가 가족이라고 아버지가 말했었다. 나는 그들을 키우는 보호자였다. 나의 아버지가 나의 의지처이자 보호자였듯이. 순간 울컥하는 심정이 올라왔다. 아버지의 죽음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한갓 새들의 죽음을 상상하면서 슬픔을 느끼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새를 기르세요?”
“십자매!”
“그렇게 바쁘신데도 생명을 키우시네요. …… 십자매라면 독수리 종류인가요?.”
“아하, 십자매는 참새 크기의 새입니다. 몸의 길이가 10㎝ 정도 되는 작은 새예요. 십자‘매’라는 표현 때문에 사람들이 아주 큰 매 종류를 생각하기도 하죠. 제가 독수리를 키운다는 소문이 퍼진 적도 있었지요. 사람들은 실제를 보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이나 공상으로 뭔가를 만들어내죠.”
막상 말하고 나니 기사를 비난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마지막 말은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내가 나의 실제를 보지 못하고 내 생각으로 만든 공상의 산물로 산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씀하셨으면 제가 아파트에 한두 번 들러서 먹이와 물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요.”
“한 달 정도는 나 없이도 지낼 수 있게 조치가 되어 있어요. 새장에서 마음대로 나와서 수도꼭지에서 흘러내리는 물통의 물을 먹을 수 있고, 먹이도 충분히 공급되어 있으니까요. 여행이나 출장을 가도 신경 쓰이지 않도록 베란다 하나를 완전히 개조하여 새의 정원을 만들었거든요. 두 마리 중에 한 마리가 나이가 많아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괜찮나 걱정이 되네요. 보통 5년 정도 사는 새인데, 거의 10년을 살았으니까요. 사람 나이로 치면 백 살쯤 되었죠.”
“앞이 보이지 않는데 …… 새가 날아다닐 수가 있나요?”
“10년을 같은 공간에서 살았으니 기억에 의존해서 조금씩 날고, 나뭇가지나 벽을 타고 다니고, 보통은 바닥에서 돌아다녀요. ‘그리’의 짝인 ‘도리’가 소리로 길을 안내하기도 해요. 제법 두 마리가 도우며 잘 살아요.”
차는 조금씩 막히기 시작했다. 기사는 앞을 묵묵하게 바라보았다. 막상 이야기를 꺼내니, 빨리 ‘도리’와 ‘그리’가 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뱀에게 잡아 먹히는 상상으로 이어지자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고 갑자기 ‘그리’가 불안해졌다.
창밖에 비가 멎은 듯했다. 새와 뱀의 실험! 이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들었을 당시에는 천적의 관계만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천적을 만나면 몸이 마비되어 저항이나 달아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잡아먹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실험이 천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유혹에 관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유혹에 이끌리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데도, 그것에 시선을 맞추기 시작하면 점점 그것에 매혹당하는 것이다. 스스로 이끌리고, 공격하지 않아도 스스로 다가간다. 커다란 뱀 앞으로 스스로 다가가서 총총거리며 뽐내고 즐긴다. 그때 기다리던 뱀은 입을 쩍 벌리고 새가 스스로 그 안으로 날아드는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에 삼켜지려는 순간처럼 갑자기 다급해졌다.
아파트로 들어가자마자 베란다 문을 급하게 열었다. 나는 맨발로 베란다로 뛰어나가 ‘그리’와 ‘도리’의 이름을 마구 불렀다. 하얀 깃털의 ‘도리’가 나를 알아보고 부산하게 울었다. 하지만 회색 깃털의 ‘그리’의 울음은 들리지 않았다. ‘할머니 그리’는 평소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기가 힘들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울었다. ‘그리’가 어디 있는지, 새장 안에도 찾아보고, 수돗가의 물항아리 주변도 찾아보고, 그들의 정원을 샅샅이 살펴도 보이지 않았다. 베란다 창문은 닫혀 있기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나는 ‘도리’에게 ‘그리’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지만, ‘그리’는 울기만 했다. 떨어진 나뭇잎 아래까지 아무리 뒤져보고도 찾을 수가 없어서 목말라하며 거실로 막 들어오려는 순간이었다. 거실 유리문 앞에 놓인 베란다용 슬리퍼 안에 뭔가가 주저앉아 있었다. 새들이 내 슬리퍼 위에 올라올 때는 나를 보고 싶을 때였다. 나를 기쁘게 하거나 나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슬리퍼 위에 와서 놀았다. 내가 생활하는 거실과 자신들이 거주하는 베란다를 이어지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오! 그리!”
나는 푸른 슬리퍼 안쪽에 웅크리고 있는 ‘그리’를 손으로 집어 올렸다. 아무런 저항도 반가움도 표현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온기로 보아 목숨은 붙어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마치 작은 솜뭉치같이 가벼웠다. 반면에, ‘도리’는 나의 귀가에 매우 기뻐하며 베란다 천장을 힘차게 날아다녔다. 안도와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울었다. 내가 ‘그리’를 돌보면 회복하리라고 여길지도 몰랐다.
“그리! 그리! 기운 내. 내가 왔어.”
나는 ‘그리’의 이름을 마구 불렀다. ‘그리’는 닫히지 않은 남은 한쪽 눈꺼풀 안의 동공으로 나를 보았다. 장님 새의 동공이었지만, 그리는 마음의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를 향한 검은 동공은 여린 빛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리’의 애틋한 홍채를 바라보며 마지막 순간임을 직감했다. 죽음에 삼켜지기 전에, 나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끝까지 버틴 것이다.
순간, 소설 ‘인공낙원의 문’의 버려져 있던 아기가 떠올랐다. 관 안의 아기의 열린 실눈이 온 생명을 다해 단테를 바라보던 모습이 기억났다. 결국, 악당들은 돈벌이가 되는 여자 사체를 포기하고 골칫거리가 될 생명을 안고 달아났다. 그 실눈 안의 눈빛 때문에 아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관에서 건져 올리라고 말하던 악당 두목 단테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 떠올랐다. 나도 단테처럼 ‘그리’의 생명을 연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리’는 나를 보고 죽기 위해 마지막까지 기다린 것이다. 아버지도 이런 심정으로 나를 기다렸을까. 비로소 눈에 눈물이 고여 들었다. 나를 마지막으로 보고 가려고 온몸으로 버티셨을 것이다. 내가 아파트에 숨어서 뒹굴며 곡선의 시간을 사는 동안에도 아버지가 얼마나 나를 간절히 기다렸을지 비로소 느껴졌다. ‘그리’를 품에 안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도리’가 울면서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나를 보았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듯 마지막 실눈을 스르르 감았다. 내가 손에 안아 올린 지 3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리’는 몸이 굳더니 고개를 뚝 떨구었다.
▶다음 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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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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