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증을 겪고 있는 어느 여성 환자의 꿈이다.
“혼자 벤치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심한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나는 급히 집으로 들어가 남편에게로 갔기 때문에 다행히 거기에서 도망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나는 남편이 신문 광고란에서 적당한 일자리를 찾아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다음은 심리학자인 아플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의 해석이다. 이 꿈은 남편과 화해하고 싶다는 감정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 그녀는 안락한 가정생활을 구축하는데 실패한 남편의 무력감과 연약함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꾼 꿈의 의미는 ‘혼자서 난관에 부딫치기 보다는 남편의 곁에서 있는 편이 오히려 낫다’는 것이었다.
한편, 이 꿈에는 그녀가 혼자 있을 때의 위험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또한 그녀가 용기와 독립과 협동을 드러내고 시행하는 일에 아직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임을 보여준다. 그녀는 이 꿈의 분석을 통해서 자신의 심리적 상태와 앞으로의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얻게 되었다.
아들러는 말한다. “꿈의 목적은 꿈이 불러일으키는 감정 속에 내재해 있다. 개인이 창출하는 감정은 언제나 그 사람의 생활양식(life style)와 일치한다.” 그의 이러한 심리적 관찰은 탁월한 통찰이라고 본다. 어떤 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 인지, 행동 등을 포함하는 생활양식을 재현한 것이며, 그 안에 자신의 감정이 꿈으로 투사 된 것이다. 꿈으로 드러난 내용은 과거 기억(memory)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에 감정이 이입되고 투사된 회상(recollection)이다. 그러므로 심리적인 꿈에는 자신의 무의식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이 반영되어있다. 참고로, 뇌과학의 발전으로 렘수면에서 꾸는 꿈은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강하게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들러는 1870년 비엔나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들러는 병약했으며 동생의 죽음으로 의사가 되고자 결심했다. 아들러의 유년기 특징은 여러 형제자매 속에서 병약함과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투쟁과정이었다. 아들러는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못해서 담임교사가 아버지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구두수선공 수련을 받게 하라고 조언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교사의 조언을 일축하고 아들을 격려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의 이론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동기는 어린 시절에 최초로 경험한 부적절감,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성 또는 완전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울러 인간은 생물학적 조건과 환경적 제약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창조할 수 있다.
1902년부터 1911년까지 아들러는 프로이트와 교류하면서 정신분석 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견해 차이로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난 후 독자적인 이론체계인 개인심리학을 발전시켰다.
1930년대 독일의 나치세력이 오스트리아에서도 점차 강해지자 아들러는 고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였다. 1937년 5월 28일 아들러는 스코틀랜드 애버딘의 한 대학에서 강연을 앞두고 산책을 하던 중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