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獨국대 뿌리친 혼혈 韓 축구국대 "마음이 그렇게 시켰어요"

2025-08-25

“전 언제나 제 뿌리와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왔습니다. 저에게 국가대표 선택은 단순히 명예나 조건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 마음이 어디에 속해 있는가’의 문제 입니다.”

한국축구대표팀 최초의 외국 태생 혼혈선수 옌스 카스트로프(22·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그는 태극마크에 진심이다.

홍명보 감독은 다음달 미국 원정 평가전 2연전에 나설 한국축구대표팀 명단을 25일 발표하면서, 한국과 독일 이중국적의 혼혈선수 카스트로프를 전격 발탁했다. 홍 감독은 이날 서울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미 분데스리가를 경험하며 꾸준히 성장을 쌓아왔다. 한국 대표팀에 합류하겠다는 강한 의지와 책임감을 보여준 점을 높게 평가한다. (대한축구협회와) 독일축구협회와 협의가 있었고, 본인 스스로 행정적으로 처리한 부분도 있었다. 뽑는데 전혀 문제는 없었다”며 “그 열정이 장점이 돼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거라고 믿는다. 이번 소집을 통해 대표팀 문화나 전술에 빠르게 적응하길 바란다”고 발탁 배경과 함께 기대감을 나타냈다.

한국축구가 1948년 런던올림픽을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한 뒤 77년 역사상 첫 첫 외국 태생의 혼혈선수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혼혈 장대일, 강수일과는 완전히 다른 케이스다.

중앙일보는 지난 3월부터 카스트로프, 어머니 안수연(59)씨, 한국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마쿠스 한 미노스포츠 대표와 꾸준히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카스트로프는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2003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안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직장을 다니다가 1996년 독일로 유학을 가서 독일인 변호사와 결혼했다. 아들 셋을 낳았고, 카스트로프가 차남이다. 일각에서는 카스트로프가 ‘귀화 선수’라고 잘못 오해하고 있지만, 카스트로프는 태어났을 때부터 한국인이 될 권리가 있었고, 그동안 출생 신고만 안 했을 뿐이다.

서울대 조경학과를 나와 독일 하노버대에서 공부한 안씨는 “난 2000년대 빗물 관리와 놀이시설물 같은 독일 친환경사업 노하우를 한국에 들여왔다. 조국에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며 “어릴적부터 옌스에게 ‘너의 뿌리는 한국이고, 한국인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이미 훨씬 전인 2022년 9월부터 대한축구협회 소속이던 독일 출신 미하엘 뮐러(전 기술위원장)가 어머니 안씨를 만나 카스트로프가 한국 국가대표로 뛸 마음이 있는지 확인했다. 2023~24년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과 뉘른베르크 출신 안드레아스 쾨프케 코치도 카스트로프를 주시했다. 홍명보 감독 체제에서도 관심이 이어지면서, 카스트로프 측도 한국 국가대표 자격을 위한 절차를 알아봤다.

안씨는 올해 2월 독일 영사관을 방문해 카스트로프 출생 신고를 마쳤고, 5월에 한국 여권을 발급 받았다. 카스트로프는 소속을 독일축구협회(DFB)에서 대한축구협회로 변경하는 행정 절차도 완료했다.

독일축구협회는 마지막까지 아쉬워하며 카스트로프 마음을 돌리기 위한 설득을 시도 했다는 후문이다. 독일축구협회는 카스트로프 매니지먼트와 대한축구협회에 연락해 “카스트로프는 독일 A대표팀의 스카우팅 롱리스트(long list·잠재적 후보자)에 포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행을 결정한다면 앞 날을 응원하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한다. 스포르트1 등 독일 언론들도 “독일의 희망이 한국으로 갔다”며 아쉬워했다.

카스트로프는 그동안 21세 이하(U-21) 대표팀 등 독일 연령별 국가대표에 꾸준히 발탁됐다. 카스트로프 측은 “독일축구협회 측으로부터 2년쯤 후 (독일 A대표팀 소속으로) EM(유럽축구선수권) 예선에 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22세밖에 안된 카스트로프는 20대 후반까지 독일 A대표팀에 스카우팅 될 기회를 기다릴 수도 있었다. 훨씬 더 수준 높은 축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팽개치고, 본격적인 커리어가 시작하기 전부터 한국행을 결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향후 독일 대표팀에 뽑히지 않을 때 차선책으로 한국을 택한 게 아니라, 일찌감치 한국행을 결심한 것에서 그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을 10번 이상 찾은 카스트로프는 홍대 거리를 좋아하고, 불고기 등 한국음식도 사랑한다. 동생 레니 카스트로프(18)도 도르트문트와 뉘른베르크 유스팀을 거쳐 축구선수로 활동 중이다.

그동안 지도했던 모든 감독들이 카스트로프를 좋아했다. ‘월드컵 최다골 보유자’ 미로슬라프 클로제 감독은 뉘른베르크 제자 카스트로프에게 “둘이 파티 하자”고 말할 정도로 총애했다. 지난 겨울이적시장에서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 아우크스부르크, 마인츠는 물론 위르겐 클롭이 레드불 풋볼그룹 글로벌 축구총괄로 있는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도 카스트로프에 관심을 보였다.

이적료 450만 유로(67억원)에 독일 명문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행을 택했고, 트랜스퍼마르크트에 따르면 이적시장 가치는 600만 유로(97억원)이다. 지난 시즌 막판 무릎을 다쳤던 카스트로프는 부상을 털어내고 25일 함부르크전에 교체출전해 분데스리가 데뷔전도 치렀다.

한국축구대표팀에서 가장 취약한 포지션은 3선 미드필더 황인범(페예노르트)의 파트너 자리다. 카스트로프는 6번(수비형 미드필더)와 8번(중앙 미드필더) 모두 소화가 가능하다. 특히 지난 시즌 뉘른베르크에서 옐로카드를 11개나 받을 만큼, 몸을 아끼지 않고 투쟁적이며 다부지고, 빌드업도 좋다. 강력한 압박으로 상대를 피곤하게 하는 젠나로 가투소(이탈리아)나 아르투로 비달(칠레) 같은 스타일이다. 쾰른 17세 이하(U-17) 팀 시절에 플로리안 비르츠(리버풀)의 바로 앞에서 뛰면서 ‘진공청소기’처럼 상대를 다 쓸어줬다. 현재 홍명보팀에 가장 필요한 자원이다.

홍 감독은 “경기력 측면만 보고 선발했다. 주앙 아로소 코치가 경기도 직관했다”며 “황인범과 김진규(전북), 박용우(알아인) 등 기존 3선 중앙 미드필더와 다른 유형이다. 굉장히 파이터 성향으로 거칠게 하는 스타일로 굉장히 플러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카스트로프는 “소속팀에서 감독님이 원하거나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윙백이나 윙어로도 뛰었다”라며 웃었다. 카스트로프의 최고 시속은 34.64㎞로 황희찬(33.3㎞)보다 빠를 만큼 스피드도 뛰어나다.

독일축구협회는 튀르키예·폴란드계 메수트 외질, 엠레 찬, 일카이 귄도간, 루카스 포돌스키, 클로제 등을 데려오려고 각국 축구협회와 경쟁했다. 한국에서 문화와 언어적인 부분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미 축구계에서 세계화는 대세다.

한국 여권을 찾은 카스트로프는 37세 이전에 일 년에 6개월 이상 한국에 체류하거나, 60일 이상 경제활동을 했을 경우 군에 소집될 수 있다. 카스트로프는 “한국 대표팀은 단순한 여권 문제가 아니라, 제가 진정으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군 문제 역시 잘 알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제가 한국 대표팀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해 뛰고 싶다는 거다. 대한축구협회, 매니지먼트와 계속해서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병역 의무를 인지하고도 카스트로프는 9000km 떨어진 독일에서 자기 발로 걸어와 한국 대표팀을 택했다.

카스트로프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In mir fliesst 50% koreanisches und 50% deutsches Blut, aber mein Herz ist koreanisch”. 한국어로 “제 피는 독일과 한국 50대50이지만, 제 마음은 한국입니다”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 마음을 경기장에서 실력으로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