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계가 동반 적자에 허덕이는데 나 홀로 꿋꿋이 흑자를 내며 버티는 회사라면 들여다 볼만한 이유가 있다. 석유화학 업계에선 금호석유화학이 그렇다. 수익성 떨어지는 업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합성 고무’ 한 우물만 우직하게 판 뚝심의 결과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금호석화는 지난해 매출 7조1550억원, 영업이익 2728억원을 기록했다. 흑자 규모는 전년 대비 줄었다. 하지만 3년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금호석화와 함께 업계 ‘빅4’로 꼽히는 LG화학(지난해 영업손실 1360억원, 2년 연속 적자)은 물론 롯데케미칼(영업손실 8948억원, 3년 연속 적자), 한화솔루션(영업손실 3002억원, 적자 전환)이 실적 부진을 겪는 것과 대비된다.

외부 평가도 긍정적이다. 금호석화는 신용등급 ‘A+’, 등급 전망 ‘Positive(긍정적)’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최근 등급 전망이 ‘Stable(안정적)'에서 ‘Negative(부정적)'로 떨어진 LG화학(신용등급 AA+)이나 롯데케미칼(신용등급 AA)과 대조적이다. 금호석화는 지난달 18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서 지난해보다 한 단계 오른 ‘BBB’ 등급을 받기도 했다.
같은 석화 업계로 묶이지만 금호석화는 다른 업체와 결이 조금 다르다. 석유화학 업계는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만든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프로필렌 같은 기초 유분을 만드는 ‘업스트림(upstream)’, 기초 유분을 다시 분해해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합성 고무 같은 정밀 화학제품을 만드는 ‘다운스트림(downstream)’으로 나뉜다. 금호석화는 후자에 속한다.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 같은 업스트림 회사는 석화 업계가 호황일 때 NCC(나프타 분해 설비) 증설 경쟁에 나섰다. 호황일 때는 실적이 좋았다. 하지만 최근 중국발 공급 과잉의 직격탄을 맞아 고전하고 있다. 반면 금호석화는 경쟁사가 NCC 증설에 나설 때도 고부가가치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추는 데 집중했다. 대표 상품이 지난해 1008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한 합성 고무다. 금호석화는 1973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합성 고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의료용·산업용 장갑 원료로 쓰는 NB라텍스 합성 고무 소재 분야에서 세계 1위다.
김도현 SK증권 연구원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인기를 끌며 합성 고무를 쓰는 대형 타이어 수요가 크게 늘었다. 전기차 타이어 교체 주기가 도래한 점도 호재로 작용했다”며 “미국이 올해부터 중국산 NB라텍스에 관세를 부과할 전망이라 반사이익도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호석화의 1분기 합성 고무 부문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240%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5년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뒤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은 ‘선택과 집중’에 나섰다. 2020년 반도체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부문을 SK머티리얼즈에 매각한 게 과감한 ‘선택’이라면, 합성고무 생산라인을 친환경·고부가가치 설비로 바꿔 관련 매출 비중을 전체의 60% 안팎까지 키워낸 건 ‘집중’으로 볼 수 있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전기차 솔루션, 친환경·바이오,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를 3대 신성장 동력으로 보고 회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