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을사년(乙巳年)이다. 1785년 조선의 대기근, 1905년 대한제국 외교권 강탈, 1965년 대한민국과 일본국 수교 등 을사년마다 국가미래의 변곡점(inflection point)이 있었다. 우연인가 필연인가. 21세기 첫을사년이 “을씨년스럽”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먼저 우리 자신이 누군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한국사람이다. 태어난 때와 장소는 달라도 배달민족의 후예다. 부모와 성은 달라도 고유문화와 전통을 이어받은 역사적 존재다. 반만 년 전부터 동북아에 터 잡아 살면서 때로는 대륙으로 때로는 해양으로 들고나며 선진문물을 주고받은 사람들의 자녀다.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에도 예의(禮義)를 잃지 않았고, 법(法)과 무(武)보다 덕(德)을 소중히 한 민족이다. 이런 토양에서 위민(爲民)·애민(愛民)·여민(與民)을 실천한 성군(聖君) 세종(世宗. 1397-1450)이 나왔다.
조상들은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해양, 유목과 정착, 농경과 상업 등이 뒤섞이는 오묘한 땅에 나라를 건국했다. 이(異)민족의 지배를 받거나 이(異)문화에 휩쓸린 때도 있었지만 독립국의 자유민으로 대대로 살았다. 3·1운동과 기미(己未)독립선언(1919) 이후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를 세워 왕정복고(王政復古) 대신 민주공화정(民主共和政)을 선택했다. 국호(대한민국)·국기(태극기)·국가(애국가)·국경일(삼일절·개천절) 등 피땀으로 지킨 법통(法統)과 유산(遺産)은 이승만정부 이후 역대 정부의 국가미래 목표 설정의 근거가 됐다.
2025년은 우리 겨레가 자유를 되찾은 지 80년, 우리 동포가 독립을 쟁취한 지 80년이다, 모두가 함께 기뻐해야 할 경사스러운 해다. 그렇지만 국토는 여전히 분단되어 있고, 남북은 UN 동시가입(1991) 이후 사실상 ‘1민족 2국가’가 됐다. 작년 연말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거대 야당의 탄핵 정국은 국민과 국론을 사분오열시켰다. 이대로 가다간 을사년의 악몽(惡夢)이 되살아날까 두렵다.
옛말에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라고 했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가 오히려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분열과 대립을 멈춰야 한다. 크든 작든 경영을 맡은 한국 정치·경제·사회·문화계 인사들은 국민의 가슴에서 피눈물이 나게 해서는 안 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에 사사로움이나 거짓이 보이거든 당장 물러나는 것이 정도(正道)다.
역사는 진보하지만 반복되는 속성이 있다. 분열과 반목과 대립과 갈등은 망국(亡國)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트럼프(D. j. Trump) 2기 행정부가 내건 ‘미국제일주의(America First)’를 마냥 부러워하거나 비난할 일이 아니다. 국익(國益)은 국력에 기반한다. 국력은 국민의 지지와 목표 공유에 달렸다. 국민은 자아존중과 상호신뢰로 위대해진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처럼 통일은 절로 오지 않는다. 한민족의 미래는 화합과 이해와 신뢰와 단결과 상생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희망은 절망 다음에 온다. 앞으로 어떤 미래구상을 할 때 한반도와 그 주변국가에 다양한 유형의 한국인이 집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구촌 180여 개 나라에 700만 명 이상의 세계한인(Global Korean)이 흩어져 살고 있다는 것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글로벌시대 한인동포사회의 확장성과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이분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이 2045년 G-2 국가로 나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상수(常數)다.
매사에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다. 을사년처럼 양면의 경계가 분명해지는 때일수록 일희일비(一喜一悲), 부화뇌동(附和雷同)해서는 안 된다.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마음은 더 중심 잡아야 하며, 말과 행동은 좀 더 신중해야 한다. 매순간 맺고 끊음이 분명해야 하며,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다. 앞으로 20년, 2045년, 해방과 광복 100년. 이때를 글로벌 한민족공동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원년(元年)으로 설정하자. 지금부터 우리가 가진 모든 가용자산과 역량, 인적·물적 자원과 과학기술, 빅데이터와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초연결(hyper-connect)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