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시인 유고시집 발간…‘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2025-05-14

“흙먼지 쌓여 지나온 마을 / 멀리 와 돌아보니 그곳이 복사꽃밭이었다” 돌아보면 고난과 어려움 흙먼지 같은 시련이 채운 삶이었지만, 그래서 아름다웠다는 깨달음. 지난해 작고한 신경림 시인의 1주기를 맞아 나온 유고 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의 첫 머리에 실린 시 ‘고추잠자리’의 한 대목이다.

1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서교사옥에서 열린 시집의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도종환 시인은 이번 책에 대해 “시집을 엮으려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 남들이 하찮다고 생각하는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시들이 많았다”며 “아직 살아있어서, 오직 살아 있어 아릅답다는 말씀을 우리에게 전한 시집”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집은 지난해 5월 22일 세상을 떠난 신경림 시인의 1주기에 맞춰 나왔다. 시인의 아들인 신병규씨 등 유족이 아버지의 컴퓨터에서 작업해온 작품들을 정리해 창비에 보냈고 도종환 시인 등이 이를 분류해 묶었다. 총 60편의 시가 실렸는데 문예지에 일부 발표한 작품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간 발표되지 않는 것들이다.

신병규씨는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글 쓰고 싶다’는 말씀을 반복해 하셨다”며 “다만 투병 중이라 많이 못쓰셨다. 시 작업을 하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셔서 가족들이 말렸다”고 말했다. 남긴 작품이 많지 않은 터라 이번 시집에 실린 시를 제외하면 특별히 더 남긴 시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인은 1956년 등단 이후 ‘가난한 사랑 노래’, ‘목계장터’, ‘갈대’ 등 교과서도 실려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을 비롯해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농무>로 1970년대 한국 민중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시인은 오랫동안 대장암 투병을 하다 지난해 별세했다. <농무>는 500호를 넘긴 ‘창비 시선’ 1호의 출발이었다. 유고 시집은 시인이 생전 마지막으로 펴낸 <사진관집 이층> 이후 11년 만의 신작이 됐다. 이번 시집은 창비 시선 ‘518호’다.

이번 시집 해설을 쓰기도 한 도종환 시인은 “언어가 쉽고 어렵지 않으며 정직한 것이 예전 작품들과 한결같다”며 “이웃에 대한 연민과 인간에 대한 사랑, 자기 성찰의 자세를 보이는 시들이 담겼다”고 했다.

신병규씨는 아버지의 삶에 대해 “거창한 서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안방에 책을 쌓아두고 작업하셨다. 늘 단출하고 형식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장남이셨는데도 제사도 절 딱 두번 하고 끝이었다. 며느리에게도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명절에도 처가에 먼저 가라고 하셨다. 그런 태도나 심성이 아버지 시에 담긴 것 같다”고 말했다.

“퇴원해 귀가하는 차 안에서, / 거실 창밖으로 산언덕을 바라보며, / 핸드폰 속에서 울리는 손자들의 목소릴 들으며, / 나는 행복했는데”(‘미세먼지 뿌연 날’ 중)라거나 “아버지와는 일부러 눈길을 피한다. / 세상에서 하고 다닌 일이 부끄러워서. 대신 / 마냥 반가워만 하는 어머니를 붙잡고 / 궁금해할 이승 소식을 주절주절 전하면서”(‘병중’ 중) 등 가족에 대한 감정, 투병 중 느낀 소회 등도 담겼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시들도 있다. “올해도 사월은 다시 오고 / 아름다운 너희 눈물로 꽃이 핀다”(‘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중)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시다. 이 외에 분단과 농촌 현실에 대한 고민,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시도 담겼다.

1주기를 맞아 오는 15일에는 시인의 모교인 동국대에서 추모 문학의 밤이 열린다. 1주기 당일인 22일에는 신경림문학제추진위원회 등이 주최하는 신경림 문학제가 시인 고향이자 그가 잠들어 있는 충북 충주시 노은면에서 열린다. 도종환 시인은 “시인이 남긴 산문을 엮은 유고 산문집은 내년쯤 발간 예정”이라며 “신경림 전집 작업 등도 예정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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