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소 용접공 1년차인 <쇳밥일지> 저자 천현우씨(35)의 올해 3월 급여명세서에 찍힌 실수령액은 204만3370원이다. 올해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한 금액 209만6270원에 미치지 못한다. 총 지급액 241만원에서 각종 세금과 보험료 등으로 37만원이 공제됐다. ‘반비(회식비)’ 2만원과 간식비 4400원, 일할 때 필요한 피복·안전장구류 5만7000원도 월급에서 모두 빠져나갔다. 천씨는 “가뜩이나 적은 돈에 일할 때 써야 할 장비값이며 간식비도 살뜰하게 떼어 간다”며 “심지어 토요일 연장을 해도 이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수천만원의 빚을 지고 한국에 와서 불법체류를 걱정해야 하고, 숙련된 하청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은 국내 조선업 생산직이 사람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정규 변호사는 “한국 사람이 안 가려고 하는 일자리에는 이주노동자 늘리면 된다는 근시안뿐”이라며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면 그 일자리는 최저임금 부근에 머무는 일자리가 되고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니까 미등록 이주민도 늘어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윤태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이주노동자의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이기 때문에 정주노동자 임금도 동반 하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할 때는 오히려 정주노동자들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정주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긴다는 인식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고 했다.
연차가 쌓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조선소의 하청노동자들은 경력이 쌓여도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분석한 결과, 한화오션의 A하청업체에서 취부사로 일하는 경력 16년의 노동자는 2024년 기준 시급 1만1730원을 받았다. 전년보다 460원 오른 수치다. 잔업, 특근을 안 하면 월급은 270만원 정도다. 세금과 보험료 등 약 40만원을 공제하면 실수령액은 더 줄어든다.
법정 최대한도로 잔업, 특근을 모두 했을 때 실수령액은 320만원 정도다. 그나마 오른 수준이다. 2022년 그가 받은 월 실수령액은 220만원 정도였다. 그는 “조선업이 호황이고 한화오션은 수백억 흑자를 내도 하청노동자는 저임금을 받는다”며 “1년에 고작 몇백원 오르니 더 이상 못 버티고 아예 조선소를 떠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2022년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며 파업에 나섰던 한화오션 옥포조선소의 하청노동자 유최안씨는 스스로를 1㎥ 철제감옥에 가두며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알렸다. 20년 넘는 경력을 가진 베테랑 용접공이던 그의 월급 역시 25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산업 경쟁력이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조선소에서 일하는 한국 노동자들의 평균 나이는 40~50대다. 젊은 노동자들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 노동자들이 은퇴하면, 조선소의 숙련 노동은 재생산되지 않은 채 맥이 끊기게 된다. 이주노동자들도 연차가 차면 숙련을 쌓을 수 있지만, 현재 한국의 이주 정책은 이주노동자들의 정주를 보장하지 않고, 조선업에 다시 불황이 찾아오면 이들은 본국으로 쫓겨날 가능성이 크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기업 경영진이 당장 원가 절감 관점에서 3년 이내 계획만 수립할 수 없는 구조에서 정부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며 “업계에서는 지금 외국인 인력을 늘려달라는 것 말고 내놓는 것이 없기 때문에 조선업 호황 시기에 임금과 처우를 개선하고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