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여러분은 ‘인터넷 친구’가 있으신가요. 있다면 그 친구를 얼마나 알고 또 가깝다고 느끼시나요. 대부분 사람들은 ‘인친’과 ‘실친’(실제 친구) 간 위계가 분명하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온라인에서 사람을 사귀는 것이 위험하다는 인식도 적지 않고요.
문장을 쓰면서도 ‘참 낡은 인식이다’ 싶습니다. 영화 <접속>이 나온 게 벌써 27년 전이니까요. 하지만 온라인에서 만난 누군가와 진정한 우정이나 사랑을 나눈다는 건 역시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저의 생각 역시 이런 세간의 인식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게임도 SNS도 즐기지 않다 보니 온라인에서 쌓은 관계랄 게 없거든요.
오랜 생각이 깨진 것은 최근 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노르웨이 청년 ‘마츠’입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마츠는 뒤셴이라는 희소병 환자였습니다. 근육이 서서히 줄면서 신체 기능을 잃어가는 퇴행성 질환이죠. 열 살이 채 되기 전 마츠는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종일 집 안에 머무는 소년이 게임에 빠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마츠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주로 ‘와우’라 불리는 게임 안에서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보내게 됩니다. 가족은 그런 마츠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찌하지 못합니다. 유일하게 할 수 있고 또 좋아하는 일을 못 하게 할 순 없었거든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그가 온라인에서 보낸 시간은 1만5000~2만 시간에 달합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어려워진 스물다섯 살의 어느 날, 마츠는 숨을 거둡니다.
마츠를 떠나보낸 가족은 그의 죽음을 온라인 세상에 알리기로 합니다. 마츠의 짧았던 생애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이 바로 그곳이니까요. 마츠가 운영하던 블로그에 가족 이름의 글을 올리자 곧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마츠의 ‘친구’들로부터 수많은 메시지가 쏟아진 것이죠. “마츠는 제게 진정한 친구였어요.” “그런 낭만주의자도 없었죠.”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았어요.”
다큐멘터리는 마츠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드러난 그의 생애를 추적, 그가 남긴 데이터를 토대로 복원하기 시작합니다. 마츠와 같은 길드에서 게임을 한 이들을 직접 찾아가 마츠와의 추억을 듣습니다.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 전역에 사는 친구들은 닉네임 ‘이벨린’으로 불린 마츠가 누구보다 용감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 이벨린은 튼튼한 두 다리로 신나게 숲속을 달리고,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때론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친구의 고민을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해결해주며 ‘해결사’라는 별명도 얻습니다. 게임만 하며 ‘고립’돼 있다고 생각한 마츠는 실은 언제나 ‘연결’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병 때문에 사랑도 우정도 경험하지 못할 것이라는 세상의 편견을 완벽하게 깨버린 것이죠.
103분간 펼쳐지는 마츠, 아니 이벨린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온라인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와 삶에 관해 다시 생각하도록 합니다.
2024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감독상 및 관객상 수상작입니다. 지난 10월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합니다. 여유로운 주말 오후 커피 한 잔과 함께 보기 딱입니다.
머리가 ‘땡’ 지수 ★★★★ 모니터 안에 진짜 사람이 있다니
눈물 ‘핑’ 감동 ‘핑’ 지수 ★★★ 이벨린의 인생은 비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