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사령부 창설 75주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3-14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미국 역사상 9명뿐인 원수(元帥·5성 장성) 가운데 한 명이다. 1903년 미 육군사관학교 졸업 이후 50년 가까이 복무한 그의 마지막 보직이 바로 유엔군사령부(유엔사) 초대 사령관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패전국 일본 점령 임무를 수행하던 맥아더에게 6·25 전쟁 발발 직후 “한국에서 침략자 북한을 격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미군은 물론 영국군, 캐나다군, 튀르키예군. 호주군 등 세계 각국에서 보낸 군대가 유엔의 깃발 아래 맥아더의 통솔을 받았다. 비록 맥아더는 북한 편에서 참전한 중공군의 공략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놓고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대립하다가 1951년 4월 해임됐으나, 인천상륙작전 성공 등으로 한국을 공산주의의 마수(魔手)에서 구해낸 그의 업적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1945년 출범한 유엔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다. 유엔 헌장은 ‘유엔 회원국은 국제 평화와 안보의 유지를 위한 1차적 책임을 안보리에 부여한다’(24조 1항)는 규정을 뒀다. 이에 따라 안보리는 전쟁 등 분쟁이 발생한 지역에 유엔 회원국 군대로 구성된 유엔군을 보내 침략자를 응징할 수 있다. 6·25 전쟁 당시 한반도에서 활약한 유엔사야말로 유엔 헌장을 근거로 창설된 최초의 군사 조직이라고 하겠다. 이후 거부권을 지닌 유엔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 자유 진영(미국·영국·프랑스)과 공산 진영(소련·중국)으로 갈라져 안보리에서 의견 일치가 이뤄지기 어렵게 되면서 유엔사는 유엔 헌장을 근거로 출범한 유일무이한 군사 조직이라는 지위까지 함께 얻었다. 오늘날 유엔사는 전 세계에서 오로지 한국에만 있다.

일본에 주둔했던 유엔사가 한국으로 이동한 것은 6·25 전쟁 휴전을 위한 정전 협정 체결 이후 4년이 지난 1957년의 일이다. 주한미군은 물론 한국군의 작전 지휘권도 유엔사에 있던 시절 그 사령관은 한국의 안전 보장에 관한 한 최고 책임자였다. 그런데 6·25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을 제외한 유엔 참전국들이 속속 한국에서 철수하며 유엔사의 입지가 미묘해졌다. ‘유엔’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한국과 미국만 남았기 때문이다. 이에 한·미 양국은 1978년 새롭게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고 그때까지 유엔사가 갖고 있던 한국군 및 주한미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을 연합사로 이양했다. 오늘날 유엔사는 정전 협정 관리 임무만 맡고 있다.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 감독위원회, 그리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부대 운영 등이 그에 해당한다.

올해는 6·25 전쟁 발발 75주년이다. 전쟁이 터진 직후에 생겨난 유엔사 역시 어느덧 출범 75주년이 되었다. 13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데릭 매컬리 유엔사 부사령관(캐나다 육군 중장)이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과 만나 ‘유엔사 창설 75주년 기념 사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맥컬리 부사령관은 유엔사의 역할과 가치를 소개하는 전시 부스 운영 등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전쟁기념관과 유엔사의 파트너십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백 회장은 “안보가 불안정한 현 시대에 유엔사의 역할과 가치를 많은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화답했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는 10월 기념관에서 열릴 ‘유엔 참전 기념 행사’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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