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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 이단아’. 크래프톤 앞에 늘상 붙는 수식어다.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확률형 아이템 일색이었던 국내 게임 산업계에서 이질적인 배틀로열(생존 경쟁) 방식 게임 ‘플레이어 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이하 배그)를 만들어 글로벌 시장을 석권한 제작사라서다. 2억1750만 명(2025년 3월 기준 배그 누적 가입 계정 수)이 즐기는 게임을 만든 회사이자, 출산지원금으로 1억원씩 주는 기업문화, ‘토스보다 따뜻하고 쿠팡보다 자유롭다’는 의사소통 구조 등 남다른 경영 행보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은 게임사 창업으로 2조원대 주식 부자 반열에 올랐지만 게임을 즐기지 않는다는 점도 여타 게임사 창업자들과 다른 점. 크래프톤이 카카오 자회사가 될 뻔한 뒷얘기,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가장 ‘리스펙’하는 창업자로 꼽은 장병규 의장 리더십 스타일까지 크래프톤의 안팎을 심층 취재했다.

◆카카오, NC 거절? 폐업 앞둔 회사의 반전=카카오 이사회가 10년 전 크래프톤(당시 블루홀) 인수를 허락했다면 어땠을까. 2016년, 창사 10주년을 앞에 둔 블루홀(현 크래프톤)은 운영자금이 말라가는 시한부 상태였다. 4년간 400억원을 쏟아부은 첫 게임 테라는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해외 진출은 실패했다. 남은 직원을 살리기 위해 창업자 장병규 의장은 회사 매각을 위해 뛰었다.
2016년 말 카카오게임즈 대표로 장 의장을 만난 남궁훈 전 카카오 대표는 “게임 사업을 하려면 플랫폼, 퍼블리싱, 개발 등 3가지 벨류체인을 확보해야했다”며 “카카오 게임즈 대표가 된 뒤 개발사 인수를 추진할 때 블루홀이 매물로 나온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카카오 이사회에 블루홀 인수를 제안했지만, 이사회는 이를 거절했다. “몇 달 월급주고 나면 자금이 다 소진되는 회사에 어떻게 베팅하냐”는 이유였다.
우여곡절 끝에 크래프톤은 카카오와 넵튠 등으로부터 100억원 투자금을 유치했고, 급한 불을 껐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크래프톤 초기투자자 A는 “장 의장이 당시 카카오 투자를 받은 후에도 매각 제안서를 들고 넥슨, NC 등을 분주하게 뛰어다녔다”고 회상했다.
장 의장은 결국 창업 10주년을 앞두고 폐업을 결심한다. 그런데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그 순간, 반전이 시작됐다. 2017년 3월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에서 얼리 액세스(시범 출시)로 출시한 게임 ‘배그’가 잭팟을 터뜨린 덕분이다. 배그는 출시 3일 만에 매출 1100만달러(당시 123억원)를 기록했다. 배그 출시가 한 달만 밀렸다면 어땠을까. A는 “그럼 회사는 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산지원금 1억…그래도 매년 1조 번다=크래프톤은 올 3분기까지 연간 누적 매출 2조4069억원, 영업이익 1조519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배그의 글로벌 성공 규모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영업이익 1조1825억원을 기록했다.
돈을 잘 버는 것 만큼, 크래프톤은 파격적인 출산·육아지원 제도로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일시금 6000만원, 8년간 500만원씩 총 1억원을 지급하는 출산·육아 지원 제도를 발표하면서 IT·게임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장병규 의장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사회적으로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고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크래프톤에서 제도를 시행될 필요가 있었다. (앞서 1억원 지원제도를 발표한)부영이 큰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크래프톤 최재근 GO(General Opera tion) 실장은 “(출산·육아지원 제도는) 직원들의 육아 고민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업무 몰입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크래프톤의 육아휴직은 법정 기간(1년6개월) 보다 긴 2년, 자녀 돌봄 재택근무(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에게 상황별 최대 1개월 재택 허용)도 다른 회사와 차별점이다.
지난 9월부터는 인구학 전문가 서울대 조영태 교수실 산하 연구팀과 출산지원 제도 검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제도의 효과를 측정하고, 개선점을 검토하기 위해서다. 최재근 실장은 “과감하게 시도하되, 수정해서 조율하고 답을 찾아가는 게 크래프톤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크래프톤만의 또 다른 문화는 전 직원 타운홀 미팅인 KLT(크래프톤 라이브 토크)다. 매달 경영진과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여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데, 지난달 122회를 맞았다. 투명한 소통을 지향하는 KLT에선 장 의장을 향한 도발적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주가가 떨어지는데 대책이 있냐”거나 “노조 만들어도 되냐”는 질문이 대표적이다. 장 의장은 “민감한 질문이 나올 때도 진솔하게 답변해야 하기에 매번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크래프톤 안팎에선 이런 문화에 대한 비판도 있다. 한 퇴사자는 “이 정도로 자주 C레벨 이상과 소통할 창구가 많은 회사가 없지만, 소통의 장이 창업자가 원하는 걸 관철하기 위한 형식적 과정처럼 느껴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게임에서 AI로=크래프톤은 지난달 23일 ‘AI 퍼스트’ 기업 전환을 선언하고, 1000억원 이상을 인공지능(AI)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게임 회사가 왜 이렇게까지 AI를 외치는 걸까.
크래프톤은 챗GPT가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기 전인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AI 분야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이듬해 김창한 대표는 딥러닝 본부(현 AI 본부)를 꾸렸다. KAIST 전자공학과, UC 버클리 전기컴퓨터공학과 석박사를 마친 이강욱 미국 위스콘신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를 본부장으로 영입했다. 크래프톤은 올해 ‘국가대표 AI’ 선발전에서 SK텔레콤 컨소시엄에 참가해 최종 후보 5개 팀이 됐다. 이강욱 본부장은 “게임 특화 AI 분야에서 크래프톤의 기술력은 큰 차별화 요소”라고 말했다.

크래프톤은 지난달 30일 엔비디아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서 크래프톤이 엔비디아와 공동 개발 중인 한 AI 협업모델 CPC(Co-Playable Character) ‘펍지 엘라이’를 공개했다. 내년 이용자 테스트를 시작할 펍지 엘라이에 대해 이강욱 본부장은 “아이템을 달라고 하던가, 공격 전략을 짜주는 등 고도의 협력이 가능하다”며 “플레이어에게 전략적인 제안도 하고, 친구처럼 음성 대화로도 소통할 수 있는 게임 속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이런 펍지 엘라이가 로봇 형태를 하고 있다면? 그건 곧 휴머노이드 로봇이 된다. 지난 4월 엔비디아 본사를 방문한 김창한 대표가 젠슨 황 CEO를 만나 휴머노이드 등으로의 확장을 염두에 둔 미래 기술 협력 방향을 논의한 이유다. 이 본부장은 “펍지 엘라이에 쓰이는 AI 기술은 가상의 몸을 체화했느냐, 실제 몸을 체화했느냐의 차이만 빼면 휴머노이드에 필요한 것과 똑같은 기술이다”며 “우리가 만들고 있는 기술과 AI 로봇의 시간적 간격은 매우 짧다”고 말했다. 이어 “휴머노이드 로봇은 게임과 관련한 사업 다각화”라며 “현재 크래프톤은 게임 제작, 퍼블리싱 두 축으로 굴러가고 있는데, 또 한 번 큰 도약을 하는 데 AI가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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