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향 HBM 공급 개시가 반격 신호 될 것" [월간중앙]

2025-08-26

글로벌 전문가들의 눈에 비친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TSMC 생산 포화, 인텔 부진…삼성전자에 열린 ‘기회의 문’”

“생성형AI·모바일·디스플레이 3축, 다변화된 포트폴리오가 위기 버팀목 역할”

삼성전자의 위기론이 더 이상 수사(修辭)가 아닐 수 있다는 우려가 비등한 가운데 해외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하반기에는 바닥을 치고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계 증권사 ‘다이와’, 홍콩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미국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 영국 투자자문사 ‘AJ벨’의 애널리스트들이 월간중앙 리서치에 의견을 보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사활을 건 핵심 경쟁력인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와 메모리 반도체 HBM(고대역폭메모리)에서 활로를 열 수 있느냐에 주목했다.

‘다키스트(Darkest) 아워’ 지나고 있는 삼성전자 HBM

삼성전자 실적은 2024년 2분기 10조4000억원 영업이익을 남긴 이래 계속 뒷걸음질 치는 중이다. 이에 관해 일본계 글로벌 증권사 ‘다이와’의 김성규 애널리스트는 “일회성 비용 발생 효과로 시장 기대치를 하회한 측면도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2분기 실적 약세 원인은 AI 주도 HBM 수요 강세에 대한 기술·제품 준비 미흡으로 적기 대응을 못 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뺏긴 삼성은 올해 하반기 엔비디아의 HBM3E(HBM 5세대) 12단 품질 테스트 통과와 2026년 HBM4(HBM 6세대) 납품을 목표로 잡고 있다.

홍콩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타룬 파탁 애널리스트는 로직 반도체에 주목했다. 로직 반도체는 데이터 처리에 특화된 반도체를 의미한다. 메모리 반도체의 주 역할이 데이터 저장인 반면, 로직 반도체의 주 역할은 데이터 연산·처리다. 전 세계 시총 1위 기업 엔비디아가 대표적인 로직 반도체 기업이다. 타룬 파탁 애널리스트는 “2023년 이후 삼성전자의 로직 반도체 부문 손실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수출 제한 조치, 트럼프의 관세 조치 등 거시경제·지정학적 환경과 환율 변동 탓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같은 환경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SK하이닉스에도 적용된다. 결국 삼성전자가 근원적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선 HBM의 엔비디아 퀄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미국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의 펠릭스 리(李旭暘, 이욱양) 애널리스트는 “AI칩 수요가 2024년부터 급증한 반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로부터 HBM3E 승인을 받는 시점이 미뤄지고 있다. 이 밖에 중국 스마트폰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HBM뿐 아니라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추격을 당하고 있다고 봤다.

그렇다고 마냥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영국 투자자문사 ‘AJ벨’의 대니 휴슨 애널리스트는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반도체 정책 탓에 삼성전자의 대중국 판매가 발이 묶여 있지만, 올해 하반기에는 이 부분이 다소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4년 12월부터 고사양 HBM의 대중국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올 2분기 삼성전자 성적표에서 주력인 반도체(DS)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조원 이상 감소했다. 김성규 애널리스트는 “삼성은 근본적으로 D램 제품 개발과 성능에서 열세였지만, HBM 사업이 2024년 하반기에 바닥을 쳤고, 지금은 회복기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대했다. 이어 “패키지 부분에서도 (경쟁사 대비) 수율 격차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나, (전영현 부회장 체제로 전환한 뒤) 작년 하반기부터 과감하게 설계 변경을 결정해 경쟁사 대비 ‘늦더라도 경쟁력 있는 제품을 제대로 만드는’ 방향으로 선회했다”고 평가했다.

또 삼성전자의 지상과제인 HBM의 엔비디아 납품에 대해선 “엔비디아 GPU 플랫폼 로드맵 일정이 지연되며 삼성전자의 전략(늦더라도 제대로 만드는 전략)이 유효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호평했다.

팰리스 리 애널리스트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그는 “대중국 H20 칩 출하 재개는 삼성의 HBM 사업에 긍정적”이라며 “삼성은 HBM4 생산을 위해 ‘하이브리드 본딩(Hybrid Bonding, 차세대 접합 기술)’과 같은 새로운 제조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경쟁사와 비슷한 일정으로 제품 승인을 받아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부터 미국산 최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같은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기존 H100칩보다 성능이 낮은 H20칩을 제작해 중국에 수출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4월 관련 규제를 강화해 H20칩의 대중국 수출도 막았으나, 최근 엔비디아의 최신 AI칩에 대해 중국 수출을 추가로 허용할 뜻을 밝혔다. 이 경우,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HBM3E 공급 시점 또한 앞당겨질 가능성이 대두된다.

대니 휴슨 애널리스트도 “중국 판매와 관련해 미국의 반도체 정책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지만, 올해 하반기부터 이 부분(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엔비디아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인 블랙웰 기반 저사양 칩의 중국 수출을 허용하면 삼성에 호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3나노 수율 확보가 파운드리 생존 조건

파운드리 사업부가 그동안 적자를 내면서 고전해 온 것도 삼성전자가 해결해야 할 급선무다.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테슬라와 23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는 낭보를 올렸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올 1분기 7.7% 수준으로, TSMC의 67.6%에 밀리고 있다. 테슬라 수주로 반전 모멘텀을 마련한 셈이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에서 수율이 TSMC보다 낮은 것을 원인으로 꼽지만 일정 부분 반등은 가능하다고 본다. 김성규 애널리스트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고질적인 수율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최근 AI 수요 확대로 첨단 파운드리 공정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한 가운데, TSMC가 추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인텔의 경쟁력 하락으로 삼성전자가 TSMC의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즉, AI 주도 첨단 파운드리 공정이 삼성전자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타룬 파탁 연구위원도 “삼성은 과거 3~5나노 공정에서 부진했던 것과 달리, 2나노 공정과 AI, 모바일 부문에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로직 반도체 부문의 손실은 주로 공격적인 투자로 인한 대규모 감가상각에서 비롯됐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삼성전자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펠릭스 리 애널리스트는 “테슬라와의 이번 계약이 장비 감가상각 등 파운드리 사업의 고정비를 충당할 것”이라며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사업에서 더 큰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첨단 공정의 수율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아가 “삼성전자의 3나노 공정 수율 불안정은 낮은 가동률로 이어졌다”며 “삼성전자는 고객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첨단 2나노 및 3나노 공정에서 안정적이고 충분한 수율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니 휴슨 ‘AJ벨’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는 혁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체적인 혁신이 어렵다면, 인수·합병(M&A)이 삼성전자의 활로가 될 수 있을까? 2016년 80억 달러를 들여 미국 하만을 인수한 이후 오랜 기간 침묵을 지켜온 삼성전자는 2023년 음악 검색·스트리밍 플랫폼 ‘룬’을 인수한 이후 공격적인 M&A를 통해 다양한 사업에 뛰어들었다. 본업인 반도체 부문에서도 M&A를 통해 활로를 찾을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김성규 애널리스트는 “물론 반도체 M&A도 필요한 부분이 있으나, 독점 금지(Anti-trust) 이슈 등으로 대규모 인수·합병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펠릭스 리 애널리스트도 “반도체 분야에서는 M&A 기회가 많지 않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이미 최첨단 로직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전 세계 두 곳 중 하나”라며 “중국과의 경쟁 속에서 구형(legacy) 칩 생산 능력을 추가로 확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 집중도가 D램보다 낮은 낸드(비휘발성 메모리) 분야 역시, 키옥시아-웨스턴 디지털 인수설이 꾸준히 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사되지 않은 것처럼, 규제 심사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M&A보다는 설비투자와 R&D 투자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의 마시모, 플랙트그룹, 옥스퍼드 시맨틱 테크놀로지스 인수는 각각 하만, 백색 가전 등과 시너지를 이루는 보완적 성격을 갖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최근 인수한 지식재산권(IP)을 자사에 효과적으로 통합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라고 짚었다.

파탁 연구위원은 “M&A 측면에서 삼성전자의 투자는 특히 AI, 로봇공학, 디지털 헬스 분야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이 모든 분야는 앞으로 성장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로봇공학과 디지털 헬스 전반에 AI가 접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래 인수·합병이 유력한 분야로는 “XR(확장현실), 의료 전자기기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 적용되고 수직 계열화되는 고부가가치 반도체 부품”을 꼽았다.

AI폰·폴더블이 이끄는 세트 부문 지속성

삼성전자의 실적을 지탱해준 스마트폰, TV·가전, 디스플레이의 미래에 대해선 “전망이 밝다”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발 관세 탓에 일부 타격을 입을 수 있으나, 파고를 넘을 것이란 시선이었다.

김성규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세트 사업(스마트폰·가전과 같은 완제품 제조·판매)은 성장세는 둔화되나 잉여현금흐름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사업이 될 것”이라며 “(세트가 아닌) 부품 사업인 디스플레이도 최고의 기술 및 원가 경쟁력을 기반으로 해 알짜 사업으로 존재감을 과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파탁 연구위원도 “스마트폰은 앞으로도 삼성전자의 실적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펠릭스 리 애널리스트는 특히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미래를 밝게 봤다. 그는 “삼성전자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부문에서 이익률이 점진적으로 하락하더라도, 생성형 AI(GenAI)폰 출시 효과를 감안하면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스마트폰 부문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디스플레이 사업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삼성전자 디스플레이의 주요 고객 중 하나인 애플은 미국 관세에서 면제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미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연간 출하량의 약 15% 정도다. 트럼프발 관세는 스마트폰 부문에서 삼성전자와 중국 브랜드 간 경쟁 구도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니 휴슨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접이식(폴드, 플립) 스마트폰은 중국 주요 시장에서 매력적인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가능성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조직문화에 대해선 아쉬움을 표했다. 김성규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인사 조직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며 그 이유로 “관리 중심의 기업 문화가 격변하는 AI 시대에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짚었다. 파탁 연구위원도 “리더십 측면에서 볼 때, 삼성전자는 과거 수많은 부침을 겪은 것이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최근 삼성전자를 둘러싼 환경은 긍정적이란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김성규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는 풍부한 현금 기반은 물론, 삼성전자 메모리의 일등 DNA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 탈피와 맞물리면서 하반기에는 개선될 것이다. 엔비디아향 HBM 공급 개시가 그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탁 연구위원도 “삼성전자는 위기를 헤쳐 나온 경험을 갖고 있다”며 “오늘날의 위기를 정확히 이해하고 재정비해 반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신규 고객 확보와 HBM4 라인업의 성공이 삼성전자의 미래를 밝힐 것”이라고 저력을 신뢰했다.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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