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휴대폰에 아내 번호를 ‘낭만감독 박사부’라는 이름으로 저장했어요. 한 경기 최소 득점(29점), 시즌 5승에 그쳤던 부산 BNK를 4년 전에 맡았어요. 고향 팀을 맡아 우승시킨 박사부, 얼마나 낭만적이에요.”
여자 프로농구 BNK가 챔피언결정전(5전3승제)에서 아산 우리은행에 3연승으로 우승한 다음 날인 지난 21일, 부산 기장의 한 카페에서 박정은(48) BNK 감독 부부를 만났다. 박 감독을 바라보는 남편, 배우 한상진(47) 눈에선 당장 하트라도 쏟아질 듯했다.
박 감독은 여자농구 사상 첫 여성 우승 감독이다. 선수·감독으로 모두 우승한 것도 그가 처음이다. 박 감독은 “마침 오늘(21일) 여성 최초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커스티 코번트리)이 탄생했던데, 나도 늘 유리천장을 뚫고 싶었다”며 “‘여성 지도자는 안 된다’는 편견을 깨 보이고 싶었다. 그래야 후배에게도 감독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전타임 때 보기 민망할 정도로 화내는 남성 감독이 간혹 보인다. 박 감독이 추구하는 건 ‘평정심을 유지하는 언니’의 리더십이다. 한상진이 설명을 거들었다. “챔프전 때 역전당했는데도 박 감독은 정적을 유지하며 기다려줬어요. 리바운드하다가 온몸에 할퀸 자국이 생긴 김소니아도 박 감독과 눈을 마주치면 반사적으로 ‘차분하게 할게요’라고 할 정도죠.” 그러더니 “박 감독 마음속에는 고요한 클래식이 흐르나 봐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 감독은 선수(용인 삼성생명)로서 마지막 시즌인 2013년, 종아리 부상을 견디며 뛰었지만 준우승했다. 당시 상대가 박혜진·김소니아가 뛴 우리은행이었다. 박 감독은 이번 시즌 직전 이들 둘을 데려왔고, 우승을 합작했다. 한상진이 또 거들었다. 이번엔 박 감독의 자유계약선수(FA) 박혜진 영입기다. 한상진은 “박 감독이 지난해 4월에 시부상을 당했다. 서울 빈소를 지키다가 밤에 막차를 타고 내려가 부산역에서 박혜진을 만나 설득을 시도한 뒤 새벽 첫차를 타고 올라오기를 사흘간 했다. 결국 발인 날 사인했다”고 전했다. 챔프전 3차전에서 박혜진은 BNK가 52-54로 뒤지던 종료 18초 전 역전 결승 3점포를 터트렸다.
선수 시절 별명이 ‘명품 포워드’였던 박 감독은 4년 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남편처럼 선수도 명품으로 바꾸겠다”고 예고했다. 2004년 결혼한 박 감독은 10년 넘게 단역을 전전하던 남편에게 “슛도 몇만 개는 쏴야 완성돼. 방향 잡고 가다 보면 빛을 볼 거야. 목소리가 중저음이라 사극이 어울려”라고 조언했다. 조언처럼 한상진은 사극 ‘이산’ 등에 출연하며 명품배우로 거듭났다.
박 감독은 최단신(1m64㎝) 가드 안혜지도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로 바꿔놨다. 상대 팀은 슛이 약한 안혜지를 상대로 ‘새깅 디펜스’(물러서서 막는 것)를 펼쳤다. 박 감독은 “외곽 찬스가 자주 올 테니 집중하자”고 늘 주문했다. 안혜지는 챔프전에서 3점 슛을 팀 최다인 7개나 성공했다. 정작 박 감독은 “감독이 명품선수를 만든 게 아니라 선수가 명품감독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공을 돌렸다.

한상진은 박 감독이 2021년 BNK 사령탑에 오르자 아내를 따라 부산에 내려왔고 주소까지 옮겼다. 한상진이 “박 감독은 부산 시민이 예금하는 은행에서 월급 받는다. 부산에서 벌었으면 부산에서 쓰고 세금도 내는 게 맞다”고 하자, 박 감독은 “그게 공정경제”라고 맞장구쳤다. 한상진은 예능 ‘나혼자 산다’의 2013년 원년 멤버다. 그해 은퇴한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그는 “아내가 감독으로 우승하니 (훗날 인기 최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것도) 후회스럽지 않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