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초 추상회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양식의 변화가 아니었다.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 같은 선구자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의 본질과 정신적 질서를 드러내고자 했다. 대상을 재현하거나 묘사하지 않고, 선과 색, 형태를 통해 인간 내면의 정서와 울림을 표현하며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추상은 이후 아방가르드 운동과 함께 모더니즘의 미학적 근거가 되었고, 현대 미술사의 중요한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현상 너머의 본질과 내면 추구
세련된 취향, 미적 스타일로 인기
모방 심리, 좀비 형식주의 비판도
작가의 사유 방식과 태도가 중요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추상미술의 대중적 인기는 갤러리와 아트 페어는 물론 최근 힐마 아프 클린트, 마크 브래드포드, ‘뉴욕의 거장들’ 같은 국내 미술관 기획전에서도 확인된다. 추상회화가 21세기에도 강력한 주류로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지난 100년 동안 제도와 비평, 교육, 시장이 함께 구축해 온 견고한 생태계 덕분이다. 아방가르드로 출발한 추상은 미술관과 갤러리, 비엔날레, 저널리즘, 미술 교육을 거쳐 표준 언어가 되었고, 비평과 담론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스티븐 젭케(Stephen Zepke)는 저서 『추상기계로서의 예술』(2005)에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을 토대로, 추상회화를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새로운 지각과 사고, 주관성을 재구성하는 역동적이고 존재론적인 실천으로 규정한다. 순수와 자유를 표방하는 추상은 냉전 시대에 미국 미술을 대표하는 국제적 양식으로 자리 잡았고, 동시에 자본주의의 문화 상품으로 급부상했다. 오늘날 국제 미술시장에서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는 장르 역시 추상회화다.
윌렘 드 쿠닝,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이미 경매시장에서 수천억 원에 거래되며 최고가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컬렉터들에게 추상미술은 복잡한 서사나 정치·사회적 맥락보다는 품격 있고 세련된 미적 취향으로 받아들여진다. 추상의 형식은 국경을 넘어 이동할 때도 ‘해석의 장벽’을 낮추고, 감상자의 참여와 상상력을 확장해 준다. 무엇보다 현대적 공간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는 점에서 시장 친화적이다.
전후 추상미술은 추상표현주의 이후 색면추상과 하드 에지로 분화해 발전했고, 이어 미니멀리즘과 포스트 미니멀리즘을 거쳐 오늘날에는 ‘사회적 추상’으로 진화했다. 줄리 머레투는 지도와 건축 도면을 겹쳐 세계화 속 권력의 구조를 드러내고, 마크 브래드포드는 사회적 균열과 정치적 갈등, 역사적 상처를 추상의 언어로 시각화한다. 미카 타지마는 알고리즘 사회에서 감정이 어떻게 관리되고 통제되는지를 색채와 형태, 공간적 장치로 번역한다. 이처럼 추상은 개념적 실천, 사회적 변용, 디지털 환경, 그리고 차용과 해체의 과정을 거치며 시대 변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생존해 왔다.
그러나 미술시장에서 추상회화의 관심과 열기는 역설적으로 부작용을 낳았다. 빠른 회전율과 고수익을 노린 경매회사와 상업 갤러리들이 젊은 작가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사회적 맥락이나 독창성, 실험 정신이 결여된 ‘유사 추상’이 양산된 것이다. 이에 대해 2014년 비평가 월터 로빈슨은 새로워 보이지만 실은 과거 형식을 재탕한 생명력이 없는 작업이라 규정하며, 이를 ‘좀비 형식주의(Zombie Formalism)’라 신랄하게 비판했다. 제리 살츠 또한 미술시장에서 쏟아져 나온 비슷한 추상화를 두고 “실험을 가장한 장식품”에 불과하다며 날 선 평가를 이어갔다.
한국에서도 단색화와 포스트 단색화가 미술시장뿐 아니라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새로운 미적 취향과 스타일로 소비되고 있다. 서울의 백화점이나 고급 매장, 병원, 카페에서 추상회화, 단색화 계통의 작품과 판화, 디지털 인쇄화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미지 과잉’의 현대사회에서 절제된 형식과 단순화, 더 나아가 내적 성찰을 추구하는 추상미술은 작가와 수집가, 관람객에게 치유와 회복, 위안과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추상회화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고 다층적이어서, 겉으로 드러난 형식만으로는 작가의 존재론적 사유의 깊이와 단순한 모방 혹은 기교의 차이를 분별하기 쉽지 않다.
추상미술이 지닌 화려한 미학적 수사에도 불구하고 비평가나 관객들이 의심의 시선을 거둘 수 없는 이유다. 유사한 스타일의 남용과 도용뿐만 아니라 ‘반복과 수행’이라는 명분으로 실행되는 유명 작가들의 자기 표절이나 매너리즘 또한 경계해야 한다. 추상은 내면의 탐구와 스타일의 진화, 그리고 상업적인 논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며 살아 있는 현대미술의 언어이다. 추상회화를 바라볼 때는 작가의 명성이나 스타일보다 작품에 스며든 작가의 사유 방식과 태도를 읽어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추상미술을 이해하는 열쇠다.
이준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