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1월 정책 청사진 공개…당국·거래소와 프로그램 본격 가동
'우수기업' 선정된 고려아연·이수페타시스 등 주주이익 침해 논란
두산그룹·오스코텍 등 '합병비율 고평가·쪼개기 상장' 투자자 반발
윤석열 대통령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을 추진하고 나선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오히려 밸류업에 역행하는 상장사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습 유상증자와 올빼미 공시, 합병이나 물적분할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어서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주도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본격 가동되고 있지만 소액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상장사들의 의사 결정은 끊이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2일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증시 개장식에 참석했고 같은 달 17일에도 다시 한국거래소를 찾아 금융 분야 민생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밸류업 프로그램 청사진을 공개하며 기업 밸류업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어올렸다.
이어 금융위원회의 밸류업 지원 방안 발표(2월)와 한국거래소의 프로그램 가이드라인 확정(5월) 및 밸류업 우수 종목을 담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 공개(9월) 등 후속 절차도 속속 진행됐다.
하지만 밸류업 우수 기업으로 선정된 곳들조차 일반 주주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정책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려아연과 두산밥캣, 최근에는 이수페타시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수페타시스는 지난 8일 오후 4시55분에 4000억원 규모의 신규 시설 투자 공시를 낸 뒤 약 1시간 뒤 코스닥 상장사 제이오 경영권을 인수하겠다는 공시도 올렸다. 당시 연이은 호재성 공시에 주가는 시간외 단일가 거래에서 오름세를 보였다.
반면 악재로 여겨지는 대규모 유상증자 공시는 시간외 거래가 끝난 6시 44분에서야 나왔다. 55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제이오 인수 대금을 마련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는 지난 8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 2조80억원의 27.3%에 달한다.
특히 이수페타시스는 공시 당일 오전에 이사회를 열어 유상증자를 결정했음에도 ‘올빼미 공시’를 한 점이 논란을 키웠다. 이에 주가가 최근 5거래일간(11월11~15일) 29.45%(3만1750원→2만2400원) 급락했고 시총도 지난 15일 종가 기준 1조4167억원으로 감소하는 등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밸류업 지수에 이름을 올린 고려아연 역시 최근 기습 유상증자 발표로 시장 안팎에서 거센 반발이 쏟아진 종목이다. 고려아연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동이 걸린 대규모 일반공모 유상증자 방침을 지난 13일 전격 철회하기로 결정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은 지난달 4~23일 자사주 공개 매수를 진행하며 밸류업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 약 11%의 지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2조6000억원을 외부에서 차입했다. 하지만 종료 일주일만인 지난달 30일 2조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기습 발표해 매입 자금을 주주 돈으로 메우려 한다는 비판이 확산됐다.
두산로보틱스도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는 합병 및 주식교환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제동이 걸려 있다.
알짜 회사인 두산밥캣과 적자 기업 두산로보틱스를 불공정한 비율로 합병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금감원이 증권신고서 수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두산로보틱스는 지난 8일 5번째 정정신고서를 제출한 상태다.
이같은 합병과 물적분할 등을 통해 결국 지배주주들만 이익을 본다는 소액주주들의 불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인 오스코텍의 자회사 제노스코도 최근 기술특례 상장을 추진하면서 주주들의 원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제노스코는 국산 항암제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폐암 신약 ‘렉라자’의 원개발사다. 소액주주들은 제노스코의 상장을 사실상 물적분할을 통한 ‘쪼개기 상장’이라고 보고 있다.
오스코텍은 지난달 21일 실시한 기업설명회에선 기업공개(IPO)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고 곧장 다음날인 22일 IPO 계획을 알려 ‘깜깜이 상장’이란 논란도 일고 있다.
여밀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소액주주 보호와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의 공개는 기업가치 제고에 중요한 요인”이라며 “충분한 논의를 통해 국내 실정에 맞는 규정을 마련해야 하고 밸류업과 소액주주 권익 보호가 맞물려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