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화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북한군들 총알받이 내몰려… 인권 유린
韓 포함 국제사회가 강력히 문제 삼아야
北의 우크라·유럽 위협, 안보 위기 초래
소명의식만으로 일하는 북한인권대사
해외 인적 네트워크 갖춘 인사가 적합
체계적이고 지원이 강화된 환경 필요
북한인권재단 설립 ‘정치화’는 안돼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일관성 유지를
트럼프 2기 韓 전략적 가치 강화해야
“북한의 인권 문제는 곧 안보 문제다. 스무살 남짓한 북한군 병사들이 러시아군 소속으로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되어 총알받이로 내몰리고, 포로로 붙잡히기 전 자폭을 명령받았다는 것은 명백한 인권 유린이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강력히 문제 삼아야 할 사안이다. 더 나아가, 북한이 한반도를 넘어 우크라이나와 유럽까지 위협하는 세력으로 부상한 것은 심각한 안보 위기다.”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이하 북한인권대사)를 지낸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북한군이 러시아 파병을 통해 6·25전쟁 휴전 이후 첫 실전 경험을 쌓고 드론(무인기) 등 현대전에 적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하면서 번 자금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투입하는 북한 정권의 행태가 국제사회의 강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이러한 군사력 강화는 한반도 안보 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며 ‘인권과 안보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금 실감케 한다.
이 교수는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post-doc. fellow)으로 활동했다. 그 뒤 유엔에서 당시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르완다 대학살 조사위원회 특별 자문관을 역임했으며, 2003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2022년 7월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공석이었던 북한인권대사로 임명되어 2년간 활동했다. 북한인권대사는 전문성을 갖춘 민간인에게 특정 목적과 기간을 정해 대사 직명만 부여하는 대외직명대사다. 최근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이 교수와 만나 북한 인권 문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인권대사로 활동하며 가장 보람을 느낀 점은 무엇인가.
“대사라는 직함이 있지만, 공무원이 아닌 비상근, 무보수로 봉사하는 자리였다. 교수로서 풀타임으로 강의하고, 석박사 과정을 지도하면서 동시에 대사 역할까지 수행하느라 고군분투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공석이었던 자리에 제가 부임해 2년간 일하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다소나마 높아진 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북한 인권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북한 내부의 인권 유린, 둘째 탈북민과 해외 노동자 등 북한 밖에서 발생하는 인권 유린, 셋째 북한 역대 정권이 우리 국민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납북과 억류 같은 인도적 범죄다. 대사 재직 기간 동안 국내외 회의, 면담, 유엔 발언 등을 통해 대사들, 고위 관리들, 전문가들, 시민사회와 소통하며 외교부와 협력해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공론화하는 데 힘썼다. 또 국방부와 협력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국군 포로를 위한 전시 공간을 마련했으며, 통일부와 함께 납북자·억류자를 기리는 송환 기원비를 선유도와 홍도에 세웠다. 저는 북한 인권 전문가가 아니라 다자외교와 안보를 전공한 학자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의 인권 유린과 안보 위협이 동전의 양면이란 점을 강조해왔고, 국내외에서 긍정적 반응을 얻은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안타까운 점도 있을 텐데.
“2023년 10월 중국 정부의 탈북민 강제북송과 관련하여 당시 막 임명된 줄리 터너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와 함께 한·미 양국이 ‘강제북송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공동 담화문을 작성하고, 유사한 입장을 가진 국가들(like-minded countries)과 더불어 이를 국제사회에 발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여러 논의가 오갔음에도 실행되지 못했으며, 아직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크다. 무보수 명예직으로서 보좌 인력이나 활동비 없이 일을 수행해야 했던 점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임기가 종료된 후 공식적인 감사나 격려를 받지는 못했지만,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맡은 바를 다한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역할이 더 체계적이고 지원이 강화된 환경에서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단지 소명의식만으로 일하는 북한인권대사는 제가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후임 북한인권대사가 6개월 넘게 공석이다. 차기 대사의 자질이나 조건을 꼽는다면.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명칭 그대로 국제사회와의 협력에 중점을 둬야 한다. 이를 위해 나름의 ‘개인기’가 필요하다. 즉, 북한 인권에 대한 깊은 소명과 해외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전직 고위 외교관이나 명망 있는 인사가 적합하다고 본다. 현재 국내외 정세가 녹록지 않은 가운데 북한 인권 문제가 다시 부차적인 이슈로 밀려날 가능성이 큰 만큼, 이를 돌파하고 국제 협력을 효과적으로 이끌어갈 신뢰받는 거물급 인사가 필요해 보인다.”
북한은 2023년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서 ‘적대적 두 국가론’을 제시하며, 남북한의 민족적 동질성과 평화통일의 당위성을 철저히 부정했다. 북한은 ‘통일은 오로지 북한이 남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할 때에만 가능하다’라는 식의 논리를 내세웠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북한이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우리는 이러한 주장을 절대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헌법상 북한 주민은 엄연한 우리 국민”이라며 “이를 포기할 경우 탈북민을 포용할 법적 근거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북한에 급변 사태가 발생했을 때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개입의 명분도 없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6년 시행된 북한인권법에 따른 북한인권재단 설립이 더불어민주당의 재단 이사 추천 지연으로 9년째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의 ‘정치화’로밖에 볼 수 없다. 민주당이 수권 정당이라면 법이 정한 대로 하는 것이 옳다. 무엇보다 인권 문제는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신임 미국 대통령은 1차 집권 때에도 그랬지만 북한 인권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어떻게 전망하나.
“트럼프 행정부는 가시적 성과와 미국 이익에 집중하며, 한반도는 고위급 외교 성과가 가능한 경우에만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과의 ‘톱다운’ 외교가 재개될 수 있지만,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지명자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비핵화보다는 군비 통제나 미사일 동결 같은 제한적 목표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핵 보유 고착화로 실질적 대화는 어려우며, ‘스몰딜’로 한국이 패싱(배제)될 위험도 있다. 현재 한국은 리더십 공백으로 정책 결정에서 패싱될 위험이 큰 상황이다. 섣불리 대미 협상 카드를 먼저 드러내기보다는, 비핵화와 대중국 견제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인도태평양 협력, 안보, 첨단기술 분야에서 기여를 통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강화해야 한다. 한편, 주요 7개국(G7)을 확대해야 한다는 국제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한국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저 역시 지난 한 해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을 포함한 G7 외연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최근 국내 상황으로 인해 이를 추진할 동력이 약화된 점은 매우 안타깝다.”
―새롭게 원장을 맡은 통일융합연구원에 대해 설명해달라.
“연구원은 고려대 전체 차원에서 남북통일 준비와 다학제적·체계적 대응책 모색을 목표로 한다. 지난달 원장직을 맡아 현재 연구원의 구조와 업무를 조정하며 새로운 방향을 고안 중이다. 연구원은 학제 간 융합을 강조하며 △정치·외교·안보 △경제·환경·에너지 △보건의료·과학기술 △사회·문화·교육 4가지 클러스터로 나누어 분야별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연구원은 연구의 국제화를 지향하며 유사한 입장을 가진 국가들뿐 아니라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존중하는 모든 국가와도 협력과 소통을 확대할 방침이다. 조만간 국립싱가포르대학교(NSU) 동아시아 연구원에 초빙되어 동아시아 다자안보, 한·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전략 협력, 북한 인권 및 위협 등을 주제로 특강과 세미나를 진행하고, 교수 및 연구원들과의 협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끝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여러분(북한 주민들)은 혼자가 아니다. 밖에는 여러분을 위해 싸우는 이들이 있다. 여러분은 김정은 일당의 피해자인 동시에 변화를 이끌 주역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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