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경제관, 이재명과 상극…'쿠폰 경제'만 꺼내면 질색했다

2025-01-31

"중앙일보가 이 시점에 왜 하필 노무현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무슨 저의가 숨어 있느냐는 거지요. 전혀 다른 의도가 없습니다. 20년 전의 노무현 시대를 돌이켜 보는 것이 매우 의미 있는 회고라는 이유가 전부입니다. 진보 진영 대통령들이라고 다 같지 않습니다. 노무현은 김대중과 노선을 달리했고, 문재인과는 더욱 달랐습니다. 차기 후보로 지목되는 이재명과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특히 경제정책 분야에서 그렇습니다.

중앙일보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가 연재 중인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 은 그가 펼친 경제정책들이 오늘의 한국 경제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 주는지를 말해줍니다.

노무현은 김대중에 이어 두 번째진보 정권을 출범시켰으나, DJ로부터 물려받은 ‘카드 대란(大亂)’이라는 시한폭탄으로 홍역을 치릅니다. 전임 대통령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부동산이든, 신용카드든 규제라는 규제는 왕창 풀었던 후유증이었지요. 가계 부채 폭등, 신용불량자 대거 속출로 하마터면 제2의 IMF 사태를 맞을 뻔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화물연대 파업, 청년 실업, 고용 없는 성장, 부동산 폭등 등 참여정부는 경제적 위기 상황에 여러 번 맞닥뜨립니다. 특히 집권 내내 노조 문제로 속을 썩였습니다. '노조 대통령'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기업 CEO 출신인 이명박보다도 노조와의 사이가 더 나빴으니까요.

노무현은 개혁과 일자리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애를 썼으나 정부 안에서조차 논란이 많습니다. '정통 관료' 출신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개혁파' 이정우 정책실장의 갈등이 그런 예입니다. 대통령은 누구의 손을 들어줬을까요.

또 단기 부양책을 매우 싫어했는데, 걸핏하면 민생회복지원금이나 현금 나눠주기를 거론하는 지금의 정치인들하고는 체질이 달랐습니다.

개혁의 기치를 높게 건 노무현 시대에 정작 해야 할 개혁은 외면했던 경우도 소개됩니다.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을 1대1로 하는 화폐개혁을 한국은행이 비밀리에 완벽하게 준비했건만, 대통령의 무관심과 386들의 무지로 사장되고 말았거든요.

그 밖에도 부동산 정책의 실패, 세금 폭탄, 한미 FTA, 방폐장 파동 등을 밀도 있게 재조명합니다. 참여정부 인사 수십 명을 인터뷰하고, 기록을 대조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새로운 역사서를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앙일보의 의도입니다.

노무현 경제관, 이재명과 상극…‘쿠폰 경제’만 꺼내면 질색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등 세 명의 ‘진보 대통령’이 있었다. 민주당이라는 뿌리를 같이한다지만 저마다 색깔과 정책이 달랐다. 만약 이재명이 다음 대통령이 된다면 네 번째다. 과연 그는 어떤 정책을 펼까. 경제 쪽에서 비교하자면 문재인에 가까운 반면, 노무현과는 전혀 다른 정책을 펴지 않을까 싶다.

이재명 정책의 트레이드 마크는 현금 나눠주기다. 전 국민을 상대로 100만원씩 주겠다는 것이 지난 대선 때 선거공약의 백미였다. 성남시장·경기지사 때도 비슷한 정책으로 재미를 봤다. 지금도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을 위한 추경 편성을 요구하고 있으며, 지역화폐나 재래시장 쿠폰 발행 관련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노무현은 그야말로 정반대였다. 참여정부 국정브리핑 팀이 펴낸 『노무현과 참여정부 경제 5년』에 수록된 실화(124쪽) 를 소개한다.

강용호 남대문시장 대표: “정부의 생계 보조금에 재래시장 쿠폰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

대통령: “좋은 말씀 해주셨다. 시장에서 특별한 대우를 해달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정부에서 채택하기 어려운 정책이다.”(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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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경제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9091

📌고용 없는 성장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9706

DJ가 떠넘긴 카드대란 지옥…盧 “IMF 위기 또 오나” 악몽

취임 후 한 달이 채 못 된 3월 20일 아침 청와대 관저.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김진표 부총리, 이정재 금감위원장,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조윤제 경제보좌관 등 경제 수뇌부가 모여 조찬을 겸한 경제상황점검회의 자리였다. 이날 이정재 위원장을 따라 온 김석동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이 금융시장 상황을 보고했다. 그는 당시 검찰이 수사 중인 SK글로벌 분식 회계 사건의 여파로 자칫 카드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대통령이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카드채 규모가 얼마나 됩니까?”

“신문 기사에는 40조~50조원 정도로 나오고 있으나, 조사해 보니 90조원을 넘는 규모입니다.”

노무현의 안색이 달라졌다. 아침밥을 먹으며 농담으로 시작한 회의장 분위기도 한순간에 싸늘해졌다. 90조원이라니. 불과 4년 전 나라를 뒤흔들고 무너진 대우그룹의 채무가 89조원 수준이었다. 사태의 도화선 격인 SK그룹의 당시 부채 총액이 33조원 정도였다. 지금 90조원 카드채가 부도가 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 아닌가. 어느새 표정이 굳어진 대통령의 어조가 달라졌다.

📌카드대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6873

盧·진보 진영, 화폐개혁 외면…‘1달러=1환’ 기회 날려버렸다

이런 환율을 상상이나 해봤는가. 어쩌면 노무현 시대에 이 같은 상상이 실현될 찬스가 있었다. 비밀작업이었기에 일반이 몰랐을 뿐이다. 대통령이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크게 한 건 할 뻔했었다. 여태껏 겪어 온 불편과 코스트, 시간 낭비, 돈 낭비를 생각하면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추진 과정을 복기해 보자.

노무현 정부 5년 가운데 가장 좋았던 한 해를 꼽으라면 단연 집권 2년 차, 2004년일 것이다. 섣부른 탄핵이 거대한 역풍으로 바뀌면서 열린우리당이 4월 총선에서 국회 과반 의석을 넘기는 대승을 거둔다. 노무현은 5월에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 노무현과 참여정부의 앞날은 탄탄대로였다. 무엇보다도 국회를 장악했으니 거칠 바가 없었다. 실제로 노무현은 2004년 하반기에 이른바 4대 개혁법안과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취임 직후부터 별러 온 과제들을 밀어붙였다.

이 같은 분위기를 타고 한국은행은 극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른바 화폐개혁이었다. 화폐개혁이라 하면 극약 처방이라는 선입견 탓에 말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행이 하겠다는 화폐개혁은 그런 게 아니었다. 기존 화폐 사용을 일시에 금지하고 예금도 묶어 두는 강압적 조치가 아니라, 화폐의 교환 단위만 바꾸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을 하겠다는 것이다. 1원, 10원, 50원짜리 동전 등이 무용지물이 된 현실을 감안해 한국 돈의 단위를 현실에 맞게 고치자는 것이다.

📌비밀리에 추진되던 화폐개혁과 박승 전 한은 총재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7412

노조 대통령의 변심

대통령부터 노조를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노조와 정부는 마치 파트너 관계처럼 돈독해졌다. 기업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서 노사문제는 노사(勞使)가 아니라 노정(勞政)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었다.

그러나 노조 대통령 노무현이 집권 3개월이 못 가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노조 문제는 두고두고 노무현의 사고 체계를 휘청거리게 만든다. 화물연대 파업이 첫 번째 계기였다.

설상가상이었다. 철도 파업과 전교조 문제 등이 연이어 터져 나오자 노무현의 노사관은 크게 흔들렸다. 비로소 대통령의 말이 슬슬 바뀌기 시작했다.

“노사관계는 이미 결론이 나서 영미식으로 가야겠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국제 수준으로 확보될 것이다.”

“노사관계는 결코 일부에 의해 국가 경제가 희생되는 모습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盧, 참다참다 공권력 발동…“노조대통령, 노조 배신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3928

📌“노조에 손 내미니 물어뜯었다” 盧 노동관 바꾼 화물연대 파업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0612

한강다리 일곱 번 건넌 이헌재..."경제는 내가 책임"

탄핵소추 당일 고건 총리로부터 경제 부문을 위임받은 이헌재 부총리는 그날 오후에만 한강 다리를 일곱 번 건너다녔다. 경제 부처들이 과천청사를 쓰던 시절, 임시 국무회의와 비상대책회의, 경제장관회의, 은행장 회의 등 쏟아지는 회의를 뛰어다니며 시장을 향해 메시지를 보냈다.

이 부총리는 한국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점부터 분명히 했다.

“이번 사태는 경제에 문제가 일어난 것이 아니다. 불안해 할 이유가 없다”면서 “책임은 내가 진다”고 강조했다. 해외 시각을 안정시키는 것도 시급한 과제였다. 권태신 국제업무정책관에게 e메일 문안을 준비시켰다. “한국 경제의 기초는 여전히 강하다. 정치 불안은 일시적인 만큼 한국 투자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메일을 IMF(국제통화기금)와 무디스 등 3대 신용평가기관, 해외 금융기관 등 1000여 곳에 밤새도록 보냈다. 주말에는 기자들을 불러 “시장을 비관해서 주식을 파는 사람들은 큰 손해를 볼 것”이라고 겁을 주기까지 했다. 폭락하던 주식시장은 주말을 넘기면서 오름세로 돌아섰다.

📌고건 대행, 11일 만에 거부권…盧 눈치 봐도 호락호락 안 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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