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3분’ vs ‘2026년 39초’
최근 10년간 온라인 영상의 평균 길이 변화다. 디지털자산관리업체인 바인더에 따르면 2016년 168초 였던 온라인 비디오의 길이는 2023년에는 75초로 짧아졌다. 바인더는 이 추세라면 당장 올해부터 1분 이내로 줄어든 뒤 내년이면 온라인 영상의 길이가 40초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봤다.
온라인 비디오 길이의 단축은 이른바 숏폼 콘텐츠가 콘텐츠 시장의 주류로 부상했다는 의미다. 10년 전 ‘이게 뭐지’ 싶던 숏폼은 이제 콘텐츠 플랫폼 업체들의 사업 전략을 통째로 뒤바꾸는 IT업계의 주류 서비스로 성장했다.
짧은 동영상 서비스의 시초는 2011년 스냅챗이다. 당시 스냅챗은 사라지는 10초 짜리 짧은 동영상을 공유하는 기능을 처음 선보였다. 이후 2013년 또다른 플랫폼 업체 바인은 아예 최대 6초 길이의 반복되는 짧은 동영상 만을 서비스했다. 바인에서는 웃음을 유발하는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숏폼 밈(meme) 문화의 시초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같은 해 인스타그랩도 이같은 흐름을 반영해 15초 길이의 동영상 공유 기능을 추가했다.
숏폼 컨텐츠 시장이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2016년 틱톡의 등장이다.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가 립싱크 동영상 업체를 인수해 선보인 서비스인 틱톡은 개인화한 알고리즘 추천 기능을 통해 사용자가 끝없이 콘텐츠를 탐색하도록 유도했다. 이용자들이 짧은 동영상을 끝없이 시청하면서 경쟁 플랫폼들의 이용 체류 시간은 점점 줄었다. 이에 2020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도 각각 릴스와 쇼츠를 출시하면서 숏폼 콘텐츠는 콘텐츠 시장의 큰 줄기를 이루게 됐다.
숏폼은 등장 15년 만에 약 100조 원 규모의 시장이 됐다. 리포츠인사이트컨설팅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글로벌 숏폼 시장이 올해 685억 달러(약 96조원)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시장의 초기 단계다. 같은 보고서는 2033년이면 시장 규모가 5152억 달러(722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연평균 성장률은 28.5%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숏폼의 급성장 배경으로 △효율적인 콘텐츠 소비 추구 △높은 접근성 △개인화 추전 알고리즘 등을 꼽고 있다. 10분 정도의 시간을 가볍게 보내고자 할 때 직접 볼거리를 골라야 하는 유튜브 긴 영상이나 넷플릭스 웹툰보다 자동으로 돌아가는 숏폼이 제격이라는 설명이다. 접근도 쉽고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 언제든 중단할 수도 있다.
다만 짧은 시간 안에 높은 자극을 제공하는 특성 상 중독 심화나 정신적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미국 국립보건원(NIH)는 숏폼 영상이 우울증이나 불안, 스트레스 등 정신 건강 문제와 관련이 있고, 할 일을 미루거나 주의력을 저하시키는 단기 지향적 사고방식을 촉진한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숏폼 미디어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20대 청년의 학업 집중력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온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환경에 장기간 노출된 뇌가 무감각 또는 무기력해지는 이른바 ‘팝콘 브레인’ 현상을 의미이다. 2011년 데이비드 레비 워싱턴대학교 교수가 처음 제시한 팝콘 브레인이란 용어는 최근 숏폼 중독 현상과 맞물려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숏폼이 이용자들의 콘텐츠 감상 방식을 재정립하면서 콘텐츠 플랫폼 기업들은 숏폼 서비스를 점점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우선 카카오톡은 지난달 23일 부터 시행한 개편 작업에서 세번 째 탭인 ‘지금탭' 내에 숏폼을 신설했다. 숏폼은 친구탭을 피드형으로 전환하고 친구의 프로필 변경 내역을 타임라인 형태로 볼 수 있게 한 것과 더불어 이번 개편에서 가장 큰 사용환경 변화 중 하나다. 앱 내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한 핵심 장치 중 하나로 숏폼을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인스타그램도 숏폼 동영상 서비스 릴스를 모바일 앱 홈 화면에 우선 노출하는 개편 시도에 나섰다. 사진 SNS로 출발한 서비스지만 이제는 숏폼이 우선순위가 되는 셈이다. 올해 15주년을 맞이한 인스타그램은 전 세계 월간 활성 이용자 30억명을 돌파하는 최강 소셜미디어서비스(SNS)다. 메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은 앱 이용 시간의 절반을 릴스에서 보냈고, 최근 전체 시청 시간은 10억 시간을 넘겼다. 이번 개편은 이 같은 성장의 일등 공신인 릴스를 서비스의 전면에 배치해 이용 편의성을 키우려는 시도로 풀이할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테스트는 이용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기능 중 하나인 릴스를 더욱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면서 “이용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홈 화면 적용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유튜브도 일찌감치 모바일 홈 화면에 일반 동영상 보다 숏츠를 우선 배치하고 있다. 최상단 광고를 제외하면 메인 페이지의 가장 윗 자리가 쇼츠다. IT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기업들은 메인 화면의 가장 위에 주력 서비스를, 그 바로 아래에 육성하고자 하는 서비스를 배치하는 경향이 있다”며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가 숏폼을 가장 먼저 보여준다는 점은 사실상 기존 서비스인 사진이나 긴 영상보다 숏폼이 핵심이 됐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웹툰 기업들도 최근 들어 숏폼 유행에 정면 대응에 나섰다. 웹툰은 숏폼 부상으로 불이익을 받은 대표적인 콘텐츠로 꼽힌다. 임희석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웹툰 부분 유료화 비즈니스모델의 한계도 결국 숏폼 유행 때문”이라며 “짧은 시간 안에 최대 도파민을 주는 우월한 대체재의 등장에 따라 웹툰 시청 동인이 감소하고 부분 유료화 모델이 상대적으로 부담스럽게 느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네이버웹툰은 지난달 부터 숏폼 애니메이션인 ‘컷츠’를 선보이고 있다. 창작자에 대한 보상 프로그램을 개시하는 등 웹툰에 이은 핵심 서비스로 육성에 나섰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인공지능(AI) 숏츠 제작 기술인 ‘헬릭스 숏츠(Helix Shorts)’를 창작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면서 숏츠 생태계를 확장 시키고 있다. 헬릭스 숏츠는 웹툰 하이라이트를 40초 내외 짧은 영상으로 자동 제작하는 AI 기술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023년 숏폼 콘텐츠 자동화 가능성을 포착한 후 개발에 착수해 올해 2월 카카오페이지 전체 이용자를 대상으로 헬릭스 숏츠 적용을 완료했다. 헬릭스 숏츠 영상은 최근 카카오톡이 개편하면서 마련한 숏폼 탭에서도 공개된다.
숏폼에 대한 사회적 논란 속에서도 콘텐츠 플랫폼 기업들의 숏폼 육성 전략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소비자가 계속해서 숏폼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허브스팟의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73%는 제품이나 서비스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 짧은 영상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기업의 89%는 마케팅 도구로 영상을 활용할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여성가족부가 올 4월 지난해 기준 10대 청소년의 94%가 숏폼 플랫폼을 이용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