쇤베르크·슈트라우스…‘시대의 비극’ 담아낸 음악들 [BOOK]

2025-11-28

애도하는 음악

제레미 아이클러 지음

장호연 옮김

뮤진트리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가사가 있는 성악곡 정도를 제외한다면, 그 어떤 형태의 예술보다 직관적이며 추상적이다. 때문에 우리는 음악이 ‘역사와 문화가 담긴 보고(寶庫)’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역사학자이자 음악 비평가인 저자는 “목격자로서 예술이 갖는 힘”을 강조하며 “음악을 시간의 메아리로 이해하며 듣자”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20세기 서구의 가장 어두운 역사인 전쟁을 몸소 겪어낸 네 명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아르놀트 쇤베르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벤저민 브리튼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한다.

소련 스탈린 체제 아래 살았던 쇼스타코비치는 감시와 공포 속에서도 예술이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상징적 인물. 그의 교향곡 5번은 겉으론 ‘사회주의적 영웅주의 찬가’로 해석됐지만 실제론 억압된 시대의 아이러니와 비탄을 담은 작품이었다. 권력은 ‘충성의 음악’이라 말했지만 청중들은 ‘슬픔 속의 환희’를 읽었다.

저자가 “불협화음의 철학자”라고 부른 쇤베르크는 독일 내 유대인 탄압이 시작되며 미국으로 망명한 경험을, 조성이라는 하나의 질서가 무너지는 ‘12음 기법’으로 표현했다. 1930년 발표한 ‘모세와 아론’, ‘현악 4중주 2번’ 등은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아름다움만으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시대의 자각이 드러난 작품이다.

슈트라우스는 나치 체제와 타협하며 복잡한 평가를 남긴 인물. 그의 후기 걸작 ‘메타모르포젠’은 나치 패망 직후 폐허가 된 독일 문화에 대한 애도이자 참회의 음악으로 읽힌다. 브리튼은 전쟁 세대를 대표하는 평화주의자. 대표작 ‘전쟁 레퀴엠’은 죽은 자와 산 자, 적군과 아군이 함께 부르는 화해의 합창이었다. 그의 음악은 인간이 서로를 기억함으로써만 아픔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의 표상이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역사가의 도구를 활용했다고 밝혔듯, 책에는 음악만 아니라 역사 이야기도 풍부하게 담겨있다. 저자가 공들여 조사한 내용은 본문 끝에 달린 53쪽 분량의 주석에서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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