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유업체 남양유업이 원유를 공급받아온 충남지역 4곳 축협에 집유량 감축을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남양유업은 경영상 어려움으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지만 하루아침에 판로를 잃을 위기에 처한 농가와 축협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아산축산농협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10월22일 ‘조합원유 공급계약량 감축협조 요청의 건’ 공문을 보내 2025년 1월1일부터 원유 집유량을 기존보다 30% 감축해줄 것을 통보했다.
남양유업은 공문에서 “장기간 발생한 영업 적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한계에 도달해 도움을 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년도 아산축협의 원유 매매 계약량을 기존 1일당 59.5t에서 41.65t으로 30% 감축해달라고 요구했다.
본지 취재 결과 남양유업과 거래해온 천안공주낙농농협, 예산축협, 대전충남우유농협 등에도 동일한 내용의 공문이 전달됐다.
남양유업이 이들 축협에 밝힌 바에 따르면 올해 1∼9월 1일당 집유량은 642t인 반면 사용량은 497t에 불과해 매일 145t의 잉여량(잉여율 22.6%)이 발생했다. 이런 탓에 내년부터는 1일당 집유량을 최소 70t 감축할 계획인 만큼 이른바 ‘집유조합’인 4곳 조합에 협조를 요청한다는 게 남양유업의 얘기다.
남양유업은 현재 집유조합 말고도 직접 계약을 맺은 ‘직송농가’와 낙농진흥회 등에서 원유를 매입한다. 집유조합에서는 하루 평균 195t의 원유를 사들인다. 남양유업 계획대로라면 집유조합의 총감축량은 일평균 58.5t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조합과 농가는 반발하고 있다. 현재 집유조합을 통해 남양유업과 거래하는 농가는 254곳이다.
부여에서 젖소 100여마리를 사육하는 조남인씨는 “젖소 1마리당 일평균 30㎏의 원유를 생산한다는 점을 고려해 감축 요구에 따라 단순 계산하면 젖소 1950마리를 강제 도태시켜야 한다”며 “이같은 요구는 사실상 파산 선고”라고 비판했다.
문상필 대전충남우유농협 상무는 “지역낙농가들의 평균 매출은 3억∼4억원이고, 생산비를 제외한 수익은 이 중 30% 수준에 불과하다”며 “내년 원유 생산량을 30% 감축하면 농가 1곳당 평균적으로 1억1000만원가량 매출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생산자들은 이번 사태가 남양유업의 주인이 교체된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올초 2년여간의 경영권 분쟁 끝에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가 남양유업의 최대주주가 됐다. 예산의 한 낙농가는 “경영쇄신 없이 농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수익성을 우선으로 삼는 사모펀드 운용사가 경영권을 차지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4곳 축협은 남양유업 요구가 철회되지 않으면 감축 기조가 유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것이라면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천해수 아산축협 조합장은 “만에 하나 남양유업 측의 감축 요구가 관철된다면 우유 생산기반 붕괴의 신호탄이 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4곳 축협과 농협경제지주는 남양유업이 감축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계약을 종료하고 낙농진흥회에 원유를 판매하는 방안을 당국과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예산문제 등이 얽혀 있어 해결이 요원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 축산경영과 관계자는 “민간기업과 조합 간 계약사항에 대해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면서도 “현재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6월부터 집유조합에 원유 수급 현황 등을 공유하며 감축 필요성을 전달했다”면서 “우유 소비가 늘어 집유량이 증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