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미국의 주요 대도시 전역에서 지반이 침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인구 60만 명 이상의 28개 대도시 모두에서 다양한 수준의 지반 침하가 진행 중이며, 주요 원인은 지하수 과도 추출로 밝혀졌다.
이번 연구는 미국 컬럼비아대 기후대학 산하 라몽트-도허티 지구관측소(Lamont-Doherty Earth Observatory)의 레너드 오헨헨 박사 연구팀이 수행했으며, 과학 학술지 네이처 시티스(Nature Cities)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위성 데이터를 활용해 28m×28m 정밀 격자 단위로 미국 대도시 지반의 수직 운동을 밀리미터 단위로 분석했다. 그 결과, 28개 도시 중 25개 도시에서 도시 면적의 3분의 2 이상이 침하 중이며, 전체적으로 약 3,400만 명이 침하 영향을 받는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텍사스주의 휴스턴은 도시 면적의 40% 이상이 연간 5mm 이상 침하하고 있으며, 그중 12%는 10mm 이상의 속도로 가라앉고 있다. 포트워스, 댈러스 등 인근 도시도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이 밖에도 뉴욕 라과디아 공항 인근, 라스베이거스, 워싱턴 D.C., 샌프란시스코 일부 지역에서 빠른 침하가 관측됐다.
연구에 따르면 전체 침하 현상의 약 80%는 지하수 사용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세립질 퇴적물로 이루어진 대수층에서 과도하게 지하수를 빼내면, 대수층 내 물이 차지하던 공간이 붕괴되며 지반 침하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텍사스에서는 석유와 가스 채굴 또한 침하를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한편, 침하 원인이 모두 인위적인 것은 아니다. 약 2만 년 전까지 북미 대륙을 덮었던 거대한 빙하의 무게로 인해 주변 지반이 융기했다가, 빙하가 사라진 이후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지역도 있다. 뉴욕, 인디애나폴리스, 내슈빌, 필라델피아, 덴버, 시카고, 포틀랜드 등이 이에 해당된다.
건물 자체의 무게가 침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2023년 연구에 따르면, 뉴욕시에 있는 100만 개 이상의 건물이 지면을 눌러 침하를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마이애미 지역에서는 새 건물의 건설로 인해 기존 구조물 주변 지반이 침하하는 사례도 관측됐다.
특히 연구팀은 “차등 침하” 현상에 주목했다. 도시 내 지역별로 침하 속도가 다르거나, 일부는 침하하고 일부는 상승하는 등 불균일한 움직임이 발생할 경우, 건물 및 도로, 철도 등 인프라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28개 도시 전체 면적 중 차등 침하로 인해 인프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역은 1% 미만에 불과하지만, 이 지역에는 약 2만 9,000개의 건물이 위치해 있으며 대부분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심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샌안토니오에서는 45개 중 1개 꼴의 건물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됐고, 오스틴(71개 중 1개), 포트워스(143개 중 1개), 멤피스(167개 중 1개)에서도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제는 단순히 문제가 있다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침하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별로 지반 상승을 위한 토지 성토, 배수 체계 강화, 인공 습지 조성 등을 통해 침수를 완화하고, 건축 기준에 지반 움직임을 반영하거나 고위험 지역 내 신규 건축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제안했다.
이번 연구에는 버지니아텍, 네덜란드 응용과학연구소, UC 버클리, 텍사스 A&M대학교, 콜로라도대학교 볼더캠퍼스, 브라운대학교, 유엔대학교 등의 전문가들도 공동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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