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평화롭지 않다면

2025-04-22

봄이 오니 이곳저곳 둘러보며 슬렁슬렁 걸어보았다. 앞만 보고 걷는 사람도 있고 땅만 보고 걷는 사람도 있지만 무뎠던 감정이 꽃망울에 붉어지는 봄날에는 두리번거리며 걷는 게 역시 최고다.

‘사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일깨운다/ 지난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T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 너무도 유명한 이 시를 해마다 사월이면 나도 읽는다. 예전에 잘 알던 스님은 봄만 되면 나무를 바라보며 시를 읊어댔는데 그 모습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이 시가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당시에는 도대체 삶이 얼마나 무겁고 힘겹길래 저런 시를 읊어대는가 싶었다. 완연한 봄이 오기 전에 느낄 수 있는 싸늘한 기운이 그의 얼굴에서 읽혔던 기억이 난다. 잔인한 달이든 평온한 달이든 어쨌든 사월은 이렇게 또 지나간다. 모든 것이 변해가고 사라져가듯이. 그리고 오늘! 늘 그렇듯 오늘은 남은 내 생의 첫날이다. 그 소중한 오늘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가족·사회의 평온 나에서 비롯

싸워서 이기면 적만 늘어날 뿐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아야

요즘은 사람들에게서 사소한 일에도 감정을 드러내면서 금세 격해지는 것을 본다. 두려움이나 절망·탐욕이 표면으로 드러나서 이러다간 싸움 나겠다 싶은 순간도 더러 있다. 또 각자의 생존에 직접적 연관이 없는데도 곧잘 흥분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게 지나치면 다툼이 된다. 제아무리 형제 같은 사이라 해도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만들고자 하면 항상 문제가 된다. “작은 불씨 뒤에 커다란 불꽃이 따르니”라는 단테의 『신곡:천국』 한 구절처럼 말이다.

『불본행경』을 펼쳐보면, 부처님 당시에 이런 일이 있었다. 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성과 꼴리야성은 서로 잘 지내는 형제 나라였다. 그러던 어느 해 가뭄이 심하게 들면서 급수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농사짓는 이들에게는 물이 필수였기 때문에 백성들은 강물을 서로 차지하려 갈등을 빚었고, 그러면서 점점 큰 싸움으로 번졌다. 군대까지 동원해서 전쟁을 일으켜 물을 차지하려고 하자 결국 부처님이 중재에 나섰다. 양국 군대 사이로 직접 걸어 들어간 부처님은 양국의 왕과 백성에게 물었다.

“당신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물의 값어치는 얼마나 됩니까?” 왕들은 물값이야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엔 “그럼, 병사들의 목숨과 피의 값은 얼마나 됩니까?” 물었다. 왕들은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하다고 했다. 그제야 부처님은 “작은 가치의 물 때문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사람의 목숨을 해친다는 것이 타당한 일입니까.” 물었다. 이 가르침으로 인해 양국은 전쟁을 멈추게 되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쉬운 질문이었고 해답도 쉽다. 올바른 견해를 가진 자라면 누구라도 물보다 피가 훨씬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 테니까. 그런데 그렇게 쉬운 일에도 우린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분쟁을 일으킨다. 우리가 평화롭게 지내지 못할 때가 많은 것도 대부분 이런 형태의 현상이다. 내 것 네 것, 내 나라 너희 나라를 나누어 이익을 추구해서이다. 그전에 우리의 존재 양상부터 살펴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텐데도 이권 앞에서는 서로를 적대적으로 대한다.

언제나 그렇듯 삶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다.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서이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매일 상황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이치대로 생각하면 해답은 자명하다. 마치 저 물보다 피가 더 귀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의 선택처럼 생각하면, 결정은 생각보다 수월할 수 있다.

삶의 고통과 불행으로 인해 나와 네가 평온하지 않고 괴로움에 빠져 있으면 괴로움은 나와 너에 그치지 않는다. 내 가족과 네 가족이 괴로워질 테고 점차 우리 사회도 어두워질 것이다. 부처님은 또 다른 전쟁에서 이런 말씀을 남겼다. “싸워서 이기면 원수와 적만 더 늘어나고 패하게 되면 괴로워서 누워있어도 편하지 않다. 그러나 이기고 지는 것을 버리고 나면 자나 깨나 편안할 것이다.”(『잡아함경』)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언제나 달리고 있고, 달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각자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멈추지 못하고 뭔가를 계속하지만 멈춰야 할 때를 안다. 그래서 늘 바빠도 곧잘 평온해질 수 있고 위태로움이 감지되면 망념을 지워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다. 좋고 나쁜 감정이 휘몰아치듯 일어나게 그냥 두지 않는다.

멈출 줄 알아야 말이나 행동에 후회가 적어진다. 계속 달리기만 하면 이정표를 놓칠 수 있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달려가게 될지도 모른다. 멈추지 못하겠거든 달리지는 말고 걸어보면 어떨까. 봄도 되었겠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면서. “교황 성하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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