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없는 삶이 죽음보다 두렵다”던 동성애자 이슬람 성직자의 죽음

2025-02-17

차에서 총격당해 사망…혐오범죄 가능성

이슬람 성직자 중 세계 최초로 커밍아웃

성소수자 등 포용하는 이슬람 사원 운영

동성애를 죄악으로 간주하는 이슬람 공동체에서 여성과 성소수자 신자들을 위한 사원을 운영해 온 세계 최초 동성애자 이맘(무슬림 예배를 인도하는 성직자)이 총격 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16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공영 SABC방송과 가디언 등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동성애자 이맘 무신 헨드릭스(58)가 전날 동부 도시 게베하에서 총탄을 맞고 숨졌다고 밝혔다.

남아공 경찰은 용의자 2명이 헨드릭스가 타고 있던 차를 가로막은 뒤 수 차례 총격을 가했다고 설명했다. 헨드릭스는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용의자들은 범행 직후 도주했다고 한다. 헨드릭스는 성소수자 커플의 결혼식 주례를 위해 게베하를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성소수자 단체 등은 혐오범죄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경찰은 용의자들의 신원이 불분명하지만 헨드릭스의 차량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이에 혐오범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1967년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헨드릭스는 아랍어 교사와 패션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다 29세가 되던 해에 가족에게 먼저 커밍아웃했고, 1996년부터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이맘으로 활동했다. 동성애자라는 성 정체성을 공개한 이맘은 헨드릭스가 세계 최초라고 한다.

통상 이슬람 공동체는 동성애를 죄악이라고 본다. 그러나 헨드릭스는 전통적인 교리 해석을 거부하고 소수자를 포용하는 게 이슬람 정신이라고 주장해왔다. 그가 운영했던 사원 홈페이지에는 “이슬람 공동체에서 소외된 여성과 퀴어 무슬림이 종교를 실천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 소개 글이 적혀 있다. 헨드릭스는 퀴어 퍼레이드 등 각종 성소수자 권리 옹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2022년에는 헨드릭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더 래디컬>이 제작되기도 했다. 헨드릭스는 주변에서 ‘안전을 위해 경호원을 고용하라’는 조언을 자주 듣지만 공격이 두렵지 않다면서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는 욕구가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헨드릭스의 사망 소식에 세계 각지에서는 추모 메시지가 잇따랐다.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국제연합체인 ‘세계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 인터섹스 협회(ILGA)’의 줄리아 에르트 대표는 “전 세계인들에게 신앙을 되찾는 여정을 선물했던 헨드릭스의 삶은 공동체의 연대가 모든 사람의 삶을 치유할 수 있다는 증거였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에서 동성애자 성공회 목사로 활동 중인 지드 매컬리는 “헨드릭스의 리더십과 용기, 포용적인 신앙 공동체를 위한 끊임없는 헌신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길 것”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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