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2025-02-02

긴 연휴를 맞아 요리를 계획했다. 메뉴는 ‘오코노미야키’. 흡사 ‘해물전’처럼 보이지만 새우와 오징어의 탱글한 식감과 마요네즈와 간장이 혼합된 짜릿한 소스 맛은 ‘혼술’에 제격인 안주 같기도 해서 홀로 맞는 명절에 더없이 어울린다. 언젠가 먹었던 그 맛을 떠올리며 신나게 마트로 뛰어갔다. ‘아, 인간은 이렇게 약간의 식량과 여유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구나’ 생각하면서. 그러나 재료를 담기 위해 채소 진열대에 다다른 순간, 내 행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양배추 7300원.” 연휴엔 라면을 먹으면서 농산물 가격 폭등의 원인을 다룬 기사를 읽었다.

일요일에도 ‘양탄자 배송’

지난 일요일에는 오전 11시쯤 겨우 일어나 한 시간 정도를 멍하게 책상 앞에 앉아서 보냈다. 일간지 투고를 비롯해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금 내 상황에서 주말에 외출 계획을 세운다는 건 사치스러운 행위다. 보험료를 내고 대출금을 갚고 나니 수중에 5만원이 남았다. 다음 원고를 준비하기 위해 봐야 할 책이 있는데 도서관엔 없고…. 결국 5만원을 ‘알라딘’에 털어낸다.

매일 먹는 라면도 얼마든지 다르게 조리할 수 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책상에서 일어선 나는 ‘쿠지라이식 라면’ 레시피를 찾아 ‘볶음 라면’에 도전했다. 일본 만화 <목요일의 플루트>에서 소개된 이 레시피는 SNS를 통해 한국인들에게도 ‘죽은 라면도 되살리는’ 조리법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한 컵 분량의 물로 면을 익힌 뒤 수프를 넣고 국물이 모두 졸아들 때까지 방치한다. 양념을 자작하게 머금은 면 위에 계란을 올리고 뚜껑을 덮어 잠시 기다리면 완성! 그런데….

딩동. 초인종 소리였다. 집에 찾아올 사람이 없었으므로 몇 번이나 ‘누구세요?’를 외쳤지만 대꾸가 없었다. 망설이다 겨우 문을 열었더니 역시 사람은 없었다. 찜찜한 마음으로 문을 닫는데 바닥으로 향한 시선에 택배 상자 하나가 들어왔다. 헉. 설마. 지금? 5만원을 탈탈 털어 산 그 책. 며칠 후에 받겠거니 하며 어제 주문한 그 책. 그것이 지금, 일요일의 나에게 도착했다.

일요일에 배송된 택배 상자를 손에 들고 나니 등골이 서늘했다. ‘주 7일 배송’에 관한 기사를 보며 느꼈던 감정과 달리 아주 생생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택배는 그 기사를 보고 우려했던 내 감정을 조롱하듯 내게 왔다. 나는 멍한 상태로 상자를 갈랐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 깨끗한 새 책이 나를 얌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이란 제목의 책이.

‘휴식 없는 배달’ 삶을 외주화

집에서 밥을 직접 해 먹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라고 한다. 조리대가 넓지 않아도, 냉장고가 크지 않아도 부지런하기만 하면 식비를 아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가도 막상 식재료의 가격을 마주하면 멈칫하게 된다. 큰맘 먹고 장을 보더라도 집에 와서 손질, 소분, 보관, 조리, 정리라는 과정을 거치면 ‘집밥은 정말 경제적인가?’하는 생각에 잠기고 만다.

그러니 ‘배달 음식’은 단지 식탁뿐 아니라 살림 자체를 외주화한 산물이다. 버튼 한 번에 담겨오는 짜고, 달고, 매운 1인분의 한 그릇. 그것이 3000만명의 가입자를 가진 플랫폼 업체의 흑자 행진을 만들고, 자영업자의 손해와 배달 노동자의 혹사 위에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소비자인 나는 ‘높은 물가’와 ‘1인 가구 살림 노동’의 어려움을 이유로 그러한 편의에 얼마든지 비용을 치른다.

경험은 하나의 관점이 된다. 30분 정도면 내가 원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이 경험은 ‘반드시 30분 안에 내 눈앞에 음식이 도착해야 한다’로 바뀐다. 장을 보지 못했어도 자정 전에만 식재료를 주문한다면 다음날 새벽에 받을 수 있다. ‘받을 수 있다’는 경험은 곧 ‘받아야만 한다’는 관점이 된다. 소비자가 플랫폼이 만든 룰에 적응할수록, 노동자는 소비자의 요구에 맞게 자신의 노동 패턴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니 ‘배달’에 휴식이 없다는 것은 ‘생산’에서도 휴식이 사라지는 일. 그렇게 결국 ‘빨간날’, 나아가 ‘휴일’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한정적인 이벤트가 된다.

밤과 낮, 평일과 빨간날 구분 없이 ‘샛별’처럼 일찍 식품을 받고, ‘로켓’처럼 빠르게 물건을 받으면 내 일상은 완벽하게 유지될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것으로 괜찮은가? 내 곳간을 채우고, 내 식탁을 채우면서 나의 하루만 평온해지는 것이 정녕 ‘삶’이 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일요일에 배송된 책은 누군가 죽어야만 개선되는 노동 환경에 관한 책이었다. 나는 어렵게 그 책을 펼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낀다. 이토록 격렬하게 외부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내가 누리는 평안이 온전히 내 것이라고 여겼던 지난 나의 아름다운 일요일들이 떠올라서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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