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카와 아야의 시사일본어] 사스규

2025-03-21

일본에는 ‘규슈 남아(九州男兒)’라는 말이 있다. 규슈 남성들이 상남자처럼 고집이 세고 무뚝뚝하며 가부장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아는 규슈 남성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그저 옛날이야기로 치부했었다. 그런데 최근 SNS에서는 이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가 자주 쓰이고 있다. ‘사스규’라는 말이다. ‘사스가 규슈(さすが九州)’를 줄인 것으로 사스가는 ‘역시, 과연’이라는 뜻으로 원래 긍정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사스규’는 ‘역시 규슈’라는 뜻으로 가부장적인 규슈의 분위기를 비꼬는 말로 쓰이고 있다. SNS에는 그 사례로 친척들이 모였을 때 여자들만 바쁘게 일하고 남자들은 빈둥거린다는 주장도 올라오고 있다. 이에 공감하는 목소리와 규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까지 나오면서, 또 다른 #MeToo를 보는 느낌이다.

몇 년 전 규슈의 대학에서 강연했을 때다. 강연을 의뢰한 교수님이 이곳 여학생들은 규슈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자극을 주기를 부탁했었다. 한·일을 오가면서 생활하는 필자의 경험담과 포부 등을 얘기해 달라는 것이다.

‘사스규’가 화제가 되면서 규슈가 다른 지역에 비해 합계출산율이 높다는 점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2023년 일본 전체 출산율은 1.20명이었는데 지역별로 차이가 컸다. 가장 높은 곳은 오키나와로 1.60명이었고, 가장 낮은 곳은 도쿄로 0.99명이었다. 2위부터 5위까지는 모두 규슈 내 지역들이 차지했다.

이와 관련해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2023년에 일본 잡지사의 기획으로 저출산 문제를 주제로 한·일 여성들이 참여하는 좌담회를 열었다. 필자는 이 행사에서 진행을 맡았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수도권에 사는 여성이었는데, 규슈에서 아이를 3명 키우는 여성도 있었다. 그 여성은 주변에 아이가 3명 이상 있는 가정이 적지 않고, 그 이유가 교육비가 비교적 싸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단 학원 자체가 집 근처에 많이 없고 대신 학교가 보충수업을 많이 해서 사교육비를 거의 안 쓴다고 설명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부담스러운 교육비가 출산을 망설이는 주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나마 한국보다 일본의 출산율이 높은 것은 일본이 한국보다 교육비가 싸기 때문일 수 있다. ‘사스규’는 부정적인 말이지만, 이를 계기로 규슈의 높은 출산율의 배경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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