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암살 모의를 들으며

"최근 많은 의원님이 연락받았는데 '러시아 권총을 밀수해서 이 대표에 대한 암살 계획을 세웠다' 등의 문자가 있었다."
『러시아 권총을 밀수해서 이 대표에 대한 암살 계획을 세웠다』
라는 대목에서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 다음은 더 놀라운데, HID나 707 OB요원들이 러시아제 권총을 밀수해서 이재명 암살계획을 갖고 있다는 부연설명이 붙었다. 2024년 12월부터 시작된 이 나라의 혼란은 이제 정상적인 사고체계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암살가능성에 대해서는 수긍할 수 있다. 이미 2024년 1월 2일 이재명 대표에 대한 피습 사건이 있었다. 이재명에 대한 백색테러, 암살모의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요즘 같은 시국에서는 ‘암살’에 대한 유혹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재명은 지금 대통령의 자리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그를 없애기 위한 방법은 헌재 판결을 뒤로 계속 미뤄서 이재명 대표에게 걸려있는 재판 판결이 먼저 나오게 하는 방법 아니면, 그를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방법 밖에 없다. 누군가 이재명이 권력을 잡는 것이 불안하다면, 지금 이 순간 ‘암살’이란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거다.
우선 러시아제 권총을 구하느니 마느니의 문제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보자.

러시아 마피아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30대 남자가
다른 러시아인 2명에게 쏜 권총을 경찰 감식반원이 취재진에게 공개하고 있다
러시아 마피아가 부산 영도에서 상대편 마피아 두목을 소음기가 달린 권총으로 쏴 죽인 적이 있다.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필리핀에 가서 총을 사들고 와서(38구경 권총) 그걸로 은행강도를 벌인 적도 있다. 두 건 모두 부산의 감천항을 뚫고 들어온 사건이다. 즉, 총을 밀수해 들여왔다는 거다.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가 들어선 지 얼마 안 된 1990년대 초중반에 부산에서는 러시아 총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러시아 선원들과 보따리장수들은 총을 들고 와 전자제품을 사가는 진풍경을 연출했었고, 이 덕분에 포장마차에서 시비가 털려 총을 쏘고, 주택가에서 총질을 하고 러시아 선원들이 총을 들고 택시 강도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던 게 1990년대의 부산이었다.
이건 2000년대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앞에서 언급한 마피아 두목 사살 사건이 2003년도 일이다. 2006년에는 러시아 권총 4자루랑 실탄 115발이 부산항에서 발견됐고, 2012년에는 러시아 선원이 권총을 차고 부산시내를 돌아다니다 붙잡힌 적이 있었다.
한국 선원이 외국에서 조업하다 국내 들어왔는데, 외국서 샀던 권총과 실탄이 걸린 적도 있었고, 외국 선원들은...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별 생각없이 권총을 차고 부산을 돌아다닌 경우도 있었다. 총기를 허용한 국가 출신들이기에 범죄란 인식이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걸 가지고 돈벌이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택시에서 권총을 밀매하다 걸렸던 적도 있었다. 비록 90년대 부산 이야기지만 말이다)
『러시아 권총을 밀수해서 이 대표에 대한 암살 계획을 세웠다』
라는 말이 허황된 말은 아니란 거다.

암살을 실행할까?
첫째, 이재명 대표는 백색테러를 당했던 기억이 있다.
둘째, 러시아산 권총을 밀수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셋째, 2025년 3월 12일 현재 대통령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이재명이다.
이 모든 것의 총합은 이재명을 암살 할 수도 있겠다는 데 힘을 실을 수 있다. 불과 반 년 전만 하더라도, 이게 무슨 허황된 소리냐고 면박을 줬겠지만 계엄령이 터지고 구속됐던 윤석열이 석방되는 걸 보니,
“뭔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문제는, HID나 707 OB들이 러시아 권총을 구해서 암살을 벌이겠다는 그림 자체가 너무 ‘짜쳐’ 보인다는 것과 별개로 권총으로 암살. 그것도 ‘정치인’을 목표로 한 경우는 ‘꽤’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꽤’ 많은 정치인들이 권총에 의한 암살로 생을 달리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였다. 노동당 당수였던 라빈은 그 동안 적대시 해왔던 아랍국가들에게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했고(그 동안 박 터지게 싸웠던 이집트와 화해를 했다), PLO의 아라파트와 만나 팔레스타인을 점진적으로 독립시키려 했다(바로 오슬로 협약이다).
라빈 총리의 이런 모습에 분노한 하레디(Haredi : 쉽게 말해 유대교 근본주의 단체) 청년 이갈 아미르가 라빈 총리를 암살한다. 이때 쓰인 도구가 흔히 구할 수 있는 9미리 베레타였다.
당시 라빈 총리는 중동 평화회담지지 집회에 참석했다가 이런 변을 당한 거다. 정치인이 집회에 참석했다가 극우 청년에게 테러를 당해 사망했다는 게... 요즘 대한민국의 시국을 생각해 보면... 쉽게 생각할 부분이 아니다.

출처 - The Guardian (링크)
계엄이 터진 마당인데, 뭔들 일어나지 않겠는가?
오늘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의 말을 듣고는,
“에이 설마...”
라고 생각했지만, ‘캡틴 코리아’가 등장하고 판사를 죽이겠다고 법원을 쳐들어가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야당 대표를 암살하겠다는 건 더 이상, 이상하지 않다.
문득 국내 추리소설 중 한 대목이 생각났다.
압도적 지지율의 대통령 후보가 암살 위협에 시달리자, 결국 이 후보를 지키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이 군함에 태워서 경호를 하는 거였다. 정치인이라면 필연적으로 대중과 접촉해야 하는데 그 자체를 막아버린 거였다. 이에 더해 아예 외부인과의 접촉 자체를 막아버린 거다. 군함이기에 민간인을 포함해 허가되지 않은 인물이 후보를 만나기는 어렵기에 가장 안전한 경호라 할만 했다.
학생 시절 이 소설을 읽으며,
“야, 새로운 형태의 경호방식이네?”
라며, 발상의 기발함에 주목했던 기억이 난다.
(대전제는 대통령 후보가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는 거였다)
이제 하다하다 유력한 대선 후보의 암살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요즘 시국을 보면서,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는지를 한탄하게 된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정치인 암살, 계엄, 법원 폭동과 같은 말들은 해외 뉴스나 과거 기록에서나 나올법한 말들이었다. 나 역시 상상조차 못한 일이다. 윤석열이 ‘미친 짓’을 하고 난 다음부터, 이게 ‘현실’이 돼 버렸다.

출처 - JTBC 2025년 1월 15일 뉴스 (링크)
구속기간을 시간으로 계산해야 할지, 날로 계산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지경까지 왔다. 유력 대선후보의 암살모의는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경계해도 부족하지 않은, 그게 2025년의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