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경향] 중국은 전 세계에서 이례적으로 저축을 많이 하는 나라로 꼽힌다. 돈을 당장 쓰기보다 모아두려는 성향이 강하다. 최근 미국에선 중국의 높은 저축률이 미국의 무역 적자를 심화시킨 주요 요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중국 가계의 낮은 소비성향이 미국 경제에 부담을 주면서 관세전쟁을 촉발했다는 논리다. 이러한 시각은 미국의 제조업 붕괴가 중국인들의 저축심리 때문이라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무역정책을 주무르는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시각은 꽤 퍼져 있다. 과연 그럴까.
오랜 대미 무역 흑자국…그 비결은 저축? — 통계를 보면 중국의 저축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다. 통계 사이트인 CEIC Data에 따르면 여윳돈에서 소비하지 않고 남은 부분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총저축률은 2022년 기준 46.46%에 달한다. 17.3%에 그치는 미국은 물론, 독일(25.81%), 일본(28.78%), 한국(34.26%)보다 월등히 높다.
중국의 저축률이 높은 원인은 단순히 중국인이 근면 성실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 상황에 대한 어두운 전망, 거품이 낀 주택시장에 대한 불안감은 현재의 현금 보유를 늘리게 만든다. 인민은행이 지난해 4분기 50개 도시 거주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 분기 주택가격 하락을 예상하는 사람이 21.1%로 상승을 예측한 사람(12.5%)보다 높다.
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은 “GDP가 연 10%씩 성장해도 중국에서 예금금리가 3% 이상 나온 적이 없는데, 중국인의 저축 성향이 높은 건 ‘시간선호도’(현재의 소비를 미래의 소비보다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정도)가 낮기 때문”이라며 “교육, 의료 등 사회보장시스템이 잘 안 돼 있고 분배가 약하다 보니 현금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높다”고 말했다. 2023년 애덤 포센 미국 피터슨국제연구소 소장은 언론 기고에서 중국이 ‘경제적 장기 코로나(economic long covid)’를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팬데믹이 끝나면서 그간 경제활동을 멈췄던 방역정책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중국인들이 투자보다 단기 유동성을 우선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축률이 높다는 건 뒤집어보면 소비가 부진하고 내수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성장률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 중 소비가 부진하니 중국 정부가 성장률 숫자를 높이기 위해 집중한 것이 투자와 수출이다. 중국의 가공할 만한 생산성이 여기서 비롯된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전체에서 생산되는 공산품 가운데 중국산은 29%(2023년 기준)다. 전 세계 두 번째로 많은 미국산과도 12%포인트 격차가 나는 압도적 1위다. 미국은 물론 유럽 나라들의 공산품 생산액을 모두 합쳐도 중국에서 나오는 물량보다 적다.
이렇게 생산된 공산품은 미국과 같은 내수 시장이 큰 나라로 흘러 들어간다. 오래전부터 중국은 만성적인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발표를 보면, 지난해 중국의 총무역 흑자액 9921억달러 가운데 미국을 상대로 낸 흑자액이 3610억달러에 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1기인 2018년 당시(3244억달러)보다 많다. 과잉 수출에 의존한 중국의 성장이 미국의 과잉 소비로 이어졌고, 미국은 무역 적자 규모는 날로 커진 셈이다.
미국의 무역 적자, 제조업 붕괴의 원인으로 중국을 지목하는 목소리도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의 선임연구원이기도 한 마이클 페티스 중국 베이징대 교수다. 통상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미국의 무역 적자 원인은 미국의 자체적인 낮은 저축률과 과잉 소비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페티스 교수는 미국의 과잉소비는 원인이 아닌 중국의 저소비에 따른 반작용, 즉 과잉 투자·생산의 결과물이라 주장한다. 10여 년 전부터 이를 비판해온 그는 지난해 FT 기고에서 “중국의 과잉 저축은 글로벌 경제에 문제를 만들고 있다”며 “(중국형 무역) 흑자는 높은 실업률, 높은 재정 적자 또는 높은 가계 부채의 형태로 무역 파트너에게 흡수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값싼 공산품으로 경쟁력을 잃은 산업들은 미국 내에서 도태되고 제조업 일자리도 사라졌다고 그는 말한다. 또 중국의 높은 저축률은 중국 당국이 의도적으로 투자와 생산에 보조금을 주는 식으로 가계의 소비를 억압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무역 적자는 중국의 과잉생산→대미 수출 증가→달러 자산 증가→달러 가치 하락→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획득을 통해 다시 조정되는 균형이 이뤄진다. 하지만 달러는 국제간 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기축통화다. 앨런 본 메렌 단스케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중국의) 저축액 중 상당 수준이 은행과 연기금을 통해 (미국) 채권 시장으로 유입된다”고 했다. 중국이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재투자를 하면서 달러 가치가 인위적으로 올라간다. 이에 따라 무역 적자가 조정되지 않고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방만한 무역 적자, 제조업 붕괴를 중국의 저축률이란 단일한 원인으로 짚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남시훈 명지대 교수는 “중국의 과잉생산 외에도 기술 발전으로 인한 노동자 대체 문제, 미국의 해외 투자 증대, 제조업 비숙련화 등 다양한 원인이 미국 제조업을 붕괴시킨 원인”이라며 “중국의 과잉생산은 미 제조업 노동자들의 피해를 부를 수 있지만, 소비자가 물건을 싸게 구입하는 측면도 있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공산품을 막는 형태로 무역 적자에 대응하면 불확실성이 가중된다”고 말했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도 “패티스는 규제를 추가한 국제무역을 하자는 케인스식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며 “이론적으론 맞는 얘기라도, 성장이 급한 개도국이나 인구 내수시장이 작은 한국 같은 나라는 수출지향 과잉생산이 아니면 성장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패티스 교수의 시각이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확산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인터넷언론 더프리프레스는 미 경제 관료들이 ‘패티스에 주입되고 있다(pettis-pilled)’고 썼다. 신현호 경제칼럼니스트는 “논리가 맞느냐 틀리냐를 떠나 주요 관료들이 그의 논리를 받아들인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그간 미국은 무역 적자에도 불구하고 강달러로 돈을 많이 벌어온 월가(뉴욕을 중심으로 한 금융자본)의 목소리가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일자리를 잃은 중서부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더 커졌고, 이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이 트럼프 주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확산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