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한민족의 창조성과 심정문화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 그 선택받은 여정]

2025-09-18

◆한민족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되다

한민족은 하늘을 향한 신앙심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해 왔다. 한글의 창제, 천문학과 과학기술의 발달, 농업 혁신, 그리고 청자와 백자에 담긴 미의식까지 모든 성취는 한민족의 창조성과 더불어 하늘부모님 심정의 표현이었다. 한민족의 창조성은 오늘을 있게 한 외적 성과요, 실천적 구현이었고, 심정문화는 내적 원천이요, 정서적 에너지가 됐던 것이다.

한글과 과학으로 일군 창조적 삶

세종대왕이 1443년에 창제한 한글은 백성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고안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구조를 가진 문자였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입술, 혀, 잇몸 등 신체의 발음기관의 모양에서 본떴는데, 과학적 사고와 언어학적 창조성이 결합된 세종대왕의 탁월한 발명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양반 지식층은 “언문은 천하다”며 거세게 반대했지만, 세종은 “백성을 위해 만든 글”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한글은 소리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반영한 독창적 발명으로, 세계 문자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한글에는 백성을 사랑한 애민정신(愛民精神)이 깃들어 있으며, 오늘날 창조성과 함께 민족의 심정을 담은 상징으로 남아 있다.

한민족은 하늘을 관찰하고 자연의 이치를 생활 속에 녹여냈다. 고려 태조 때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별자리와 하늘의 운행을 정밀하게 기록한 지도로, 1,467개의 별이 들어가 있다. 단순히 학문적 성과를 뛰어넘어 천문 현상을 백성의 농사와 국가 제례에 연결한 것으로, 하늘의 뜻을 실천하려는 문화적 유산이다. 신라의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 시설이며, 별자리와 절기를 기록해 둠으로써 농사와 제례에 활용됐다.

조선 세종 때는 한글 뿐아니라, 천체의 위치와 기후를 관측하는 혼천의(渾天儀), 간의(簡儀), 측우기(測雨器) 등이 제작되어 천문과 기상까지 체계적으로 측정할 수 있었다. 솥뚜껑 모양의 앙부일구(仰釜日晷, 해시계)와 자격루(물시계) 같은 발명품은 백성 누구나 마을 한가운데서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한 과학기술로, 하늘의 운행을 생활 속에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다. 하늘의 뜻을 알고자 했던 한 민족의 천손문화(天孫文化)를 보여준다. 별과 해, 비와 물의 움직임을 생활과 연결한 창조성은 민족적 신앙과 생활의 창조성이 맞닿은 성과다. 그 뛰어난 창조성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금속활자·백자·농업기술 세계사에 빛나

고려가 남긴 금속활자 인쇄술은 세계 인쇄사에서 빛나는 성취다. 12세기 말 금속활자 인쇄술이 발명되었는데, 서양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선 쾌거다. 1377년에 인쇄된‘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으로 공인받고 있다. 독일의 발명가 구텐베르크보다 약 78년 앞선 이 인쇄술은 사상과 학문을 신속히 퍼뜨리게 했다. 직지심체요절은 불교 선종의 여러 조사(祖師)들이 남긴 말씀과 가르침을 모아 엮은 책인데, 단순한 불교 경전이라기보다 백성에게 지혜와 깨달음을 나누고자 한 민족적 창조 정신의 산물이었다. 글자를 통해 지식을 공유하려는 정신은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와 맞닿아 있다.

조선 전기에는 지역별 농사법을 집대성한 농업서적 ‘농사직설(農事直說)’은 조선의 기후와 토양에 맞춘 체계적 농업 지침서였다. 이 책은 간행되자마자 농민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다. 1441년 경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이 발명한 세계 최초의 측우기와 수표(水標)는 강수량과 하천 수위를 기록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재해를 예방하는 과학적 장치로 활용됐다. 유럽에서는 16세기 후반이나 17세기 들어서야 비슷한 장치가 개발됐다. 세계적으로 매우 앞선 농업 기술은 백성의 삶을 지탱하고 풍요롭게 만들려는 창조적 노력의 결실이다. 한민족의 농업 문화는 생계를 위한 노동이기도 하지만, 더나아가 하늘과 땅에 감사하며 민족적 심정을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고려 청자는 비취빛 유약과 정교한 상감 기법으로 ‘하늘빛을 담은 그릇’이라 불렸다. 예술적 가치와 기술력 측면에서 당연히 독보적이다. 15~19세기 제작된 조선의 백자는 18세기 유럽까지 알려지며 ‘동양 백자의 대표’로 인식됐다. 백자는 절제된 순백미로 백성들의 생활 철학을 담아 서민의 생활 속에서도 깊은 울림을 주었고,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었다. 청자와 백자는 각각 상류층과 일반 민중의 생활용품으로 사용됐으나, 실용성과 미적 가치를 동시에 갖춤으로써 민족의 심성과 세계관이 투영된 예술품에 가까웠다. 검소함 속의 아름다움, 깊이 있는 심정의 표현은 오늘날 한국인의 미의식에도 계승되고 있다.

심정문화는 창조성의 근원

한글, 과학기술, 농업, 도자기 등에서 나타난 이 모든 한민족의 창조성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힘이었으며, 심정문화는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즉 애천(愛天)·애인(愛人)·애국(愛國)의 정신에서 비롯됐다. 한민족에게 심정문화가 없었으면 창조성은 방향을 잃었을 것이고, 창조성이 없었으면 심정문화는 현실에서 구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두 개념은 내적 동기와 외적 성취로서 상호보완적이며, 한민족의 정체성과 자부심의 근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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