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광주·구미·부산을 잇는 반도체 삼각 벨트를 조성하는 배경에는 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의 고전이 자리 잡고 있다. 남부 제조업의 버팀목이었던 이 업종들이 미국 관세, 중국 추격 등의 여파로 흔들리면서 지역 경제까지 타격을 받자 반도체를 내세워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수도권에 반도체 산업단지가 집중돼 전력·용수난이 예고돼 있는 것도 반도체 벨트 조성의 또 다른 이유다.
실제 해외 주요 반도체 산단들은 비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TSMC가 있는 대만의 반도체 클러스터는 수도 타이베이 인근이 아닌 신주·타이중·타이난·가오슝을 따라 대만 서부에 형성돼 있다. 글로벌 1위 반도체 패키징 기업인 ASE 본사 역시 타이베이에서 약 350㎞ 떨어진 가오슝에 소재한다.
TSMC가 일본 소니 등과 손잡고 설립한 자회사인 JSAM과 도쿄일렉트론 등 반도체 팹들 또한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균형 발전 전략에 발맞춰 수도 도쿄가 아닌 규슈 지방 구마모토에 자리를 잡았다. 풍부한 지하수를 바탕으로 ‘반도체의 혈액’이라 불리는 초순수(超純水)를 제조·공급하기에 유리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또 규슈 지역은 원자력발전소가 4기 있는 반면 전력 다소비 산업이 없어 전기요금이 일본 내 대부분 지역보다 저렴하다.

반도체 삼각 벨트 역시 낙동강·영산강 등 수원이 가깝고 재생에너지로 생산되는 전력이 많은 남부권이 입지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특히 광주에 조성될 첨단 반도체 패키징 클러스터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산단으로 꾸려질 가능성이 높다. TSMC의 경우 2040년까지 RE100을 조기 달성하겠다고 밝힌 반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은 2050년을 RE100 달성 목표 시점으로 정하고 있어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라도는 서남권 해상풍력발전단지, 국내 최대 태양광발전단지 솔라시도 등이 인근에 있어 RE100 달성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 각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해당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지산지소’형 에너지 소비·공급 체계가 구축되고 일본·미국과 같이 지역별 차등 요금제가 도입되면 관련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산업부 국정감사에서 수도권에 집중된 국가 반도체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에 “서남권·동남권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며 “특히 반도체 관련해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상으로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 신규 반도체 투자가 필요한 지역은 비수도권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의 이 같은 전략이 실제 기업들의 투자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인력·주거·교육 등을 총망라한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지방 이전을 꾀한 제조 업체들은 수도권과 가장 가까운 충청권을 ‘레드라인’으로 삼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최근 10년간(2013~2022년) 수도권 제조 업체의 비수도권 이동 양상을 분석한 결과 충청권 유입은 70%에 육박했다. 충청권을 제외한 비수도권으로의 유입 비중은 호남권 9.2%, 강원·제주권 7.9%, 대구·경북권 7.6% 등 모두 한 자릿수에 그쳤다.
연구진은 “수도권 산업 기능의 지방 분산 효과가 충청권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면서 기존의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 구조는 수도권 및 충청권, 그 외 비수도권 간 대립 구조로 전환했다”며 “수도권 산업 기능 분산 효과를 다양한 비수도권 지역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비수도권 지역 환경 특성을 상쇄시킬 수 있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6~7%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을 전략적·안정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반도체특별법이 1년 6개월 넘게 국회에 계류돼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산업의 주52시간 근로 예외 적용 조항을 두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이 통과될 경우 정부는 반도체 특별회계 신설, 클러스터 지정·인허가 간소화 등 각종 지원을 꾀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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