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미국 특허라도 한국에서 그 기술을 사용했다면 지급한 사용료는 국내 소득으로 보아 세금을 매길 수 있다고 판결했다. ‘외국 특허 사용료는 과세 대상이 아니다’라는 기존 판례를 11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주심 대법관 권영준)은 18일 한 국내 반도체 기업이 이천세무서를 상대로 제기한 경정거부처분(이미 낸 세금을 다시 계산해 달라는 요구를 세무서가 거부한 처분) 취소 소송에서 기업이 승소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특허의 사용은 특허권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실제로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며 “등록 여부와 무관하게 국내에서 쓰였다면 과세 대상”이라고 판결 요지를 밝혔다.
사건은 국내 기업이 미국 회사와 특허분쟁을 합의로 정리하면서 미국 특허 사용료(로열티)를 지급하고, 이에 대해 원천징수 세금을 납부한 뒤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특허라 과세할 수 없다”며 세금 환급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1·2심은 기업의 주장을 받아들였으나, 대법원은 반대로 판단했다.
재판부 다수의견(대법관 10명)은 우선 ‘특허 속지주의’의 의미를 짚었다. 속지주의는 '특허 침해 책임을 어느 나라 법으로 물을 수 있느냐'를 정하는 원칙일 뿐, 특정 기술 자체의 사용 가능성을 부정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기술은 한국에서 사용될 수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게 전합 판결의 요지다.
이어 한미조세협약 해석 원칙도 언급했다. 협약에 정의되지 않은 ‘특허의 사용’ 개념은 해당 국가 세법에 따라 해석해야 하는데, 우리 법인세법은 ‘특허의 사용’을 ‘특허 기술의 실제 활용’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즉, 기술이 국내 제조나 판매 과정에 투입돼 경제적 가치가 실현됐다면,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외국 특허라 하더라도 그 대가(로열티)는 국내원천소득으로 과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대법관은 정반대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특허는 등록된 국가에서만 법적 권리가 발생하고 보호되기 때문에,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특허 사용료를 과세 대상으로 보는 것은 특허 제도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30년 넘게 유지돼 온 기존 판례를 변경하려면 새로운 입법이나 국제적 합의 등 설득력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며, 법원의 해석만으로 판례를 바꾸는 것은 과도하다는 점도 짚었다.
한편, 이번 판결로 국세청은 앞으로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 기업에 지급하는 거액의 특허 사용료에 대해 과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보하게 됐다. 대법원은 “특허 속지주의는 침해 책임 범위를 정하는 원칙일 뿐 과세 여부를 제한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며, 한미조세협약 해석 역시 우리 세법의 정의에 따라 실제 기술 사용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명확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