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손 일본 히로오카 사무소 가보니
출시 전 페이퍼랩 신형 모델 선보여
재생률 70%… 기기 부피 절반 줄여
세절·재생산 기능 분리해 접근성↑
“종이 살 비용을 아끼자고 이 제품을 산다? 그건 거의 미친 짓입니다.”
5일 세이코엡손(이하 엡손) 관계자는 일본 나가노현에 있는 엡손 히로오카 사무소에서 세계 최초의 종이 업사이클링 시스템 페이퍼랩의 신형 모델 ‘뉴 페이퍼랩’(사진)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글로벌 출시 일정도 안 잡힌, 이날 국내 언론에 최초 공개된 제품이다.
눈앞엔 복사기를 가로로 길게 늘여놓은 듯한 거대한 기기가 놓여있었다. 잘게 세절된 A4 이면지를 기기에 넣고 버튼을 두어개 누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재생용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존 이면지보다 펄프 표면이 아주 살짝 고르지 않았을 뿐, 재생용지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새 종이로 착각할 정도로 품질이 좋았다.
뉴 페이퍼랩은 700장 분량의 이면지를 넣으면 재생용지 500장가량을 뽑아낸다. 재생률이 70%가 넘는다. 종이 사용량 절감으로 인한 비용 보전이 핵심 셀링포인트로 보이지만 엡손 관계자는 방점이 다른 곳에 있다고 강조했다.
뉴 페이퍼랩 이전 모델인 페이퍼랩은 2016년 처음 개발됐다. 오리지널 페이퍼랩과 개선된 버전인 페이퍼랩 리프레시가 있는데, 대당 가격이 2500만엔에 달한다. 종이 구매 비용을 아끼기 위해 페이퍼랩을 들일 바에야 새 종이를 더 사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도 페이퍼랩은 현재까지 일본 85대, 유럽 3대 등 90대 가까이 판매됐다. 일본 3대 은행 중 한 곳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을 포함해 보험사, 건설사, 공공기관 등에서 주로 사용 중이다. 무슨 일일까.
페이퍼랩의 차별화 지점은 친환경에 있다.
페이퍼랩은 이면지를 섬유로 분해하고 이를 다시 결합해 깨끗한 새 종이로 만드는데, 이때 엡손의 특허인 ‘드라이 섬유 기술’이 적용된다. 기존 재활용 제지기는 업사이클링 과정에서 다량의 물을 사용하지만 페이퍼랩은 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엡손 관계자는 “내부 습도 유지에 필요한 한 컵 정도의 물만 쓰므로 폐수 문제가 없어 환경 부담을 줄여준다”고 말했다.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효과도 1년에 약 6만2000t에 달한다. 사용된 폐지를 원료로 연간 85그루의 나무를 아낄 수 있다는 게 엡손의 설명이다.
보안도 주요 구매 요인으로 꼽힌다. 보안 문서를 일반 세절기에 넣으면 분쇄된 종이를 이어붙여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러나 페이퍼랩은 종이를 섬유 단위로 분해하므로 복원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 주요 구매처에 보안 이슈에 민감한 은행, 보험사 등이 포함된 이유다.
뉴 페이퍼랩은 기존 페이퍼랩의 장점을 강화한 제품이다. 소비전력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재생용지 제작 시 자연 유래 결합체를 사용해 친환경 기능을 강화했다. 페이퍼랩으로 만든 제지 용지량, 이산화탄소, 물 소비량 등도 표시해 편의성을 확대했고, 기기 좌우 길이를 늘인 대신 높이를 낮춰 총 부피를 기존 대비 절반가량으로 줄이면서 사무실 환경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채택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세절 기능과 업사이클링 기능을 분리한 것이다.
페이퍼랩은 이면지를 넣으면 기기 안에서 세절·분해해 재생용지로 탈바꿈시켰다. 사무실마다 페이퍼랩이 있어야만 재활용이 가능한 것이다.
뉴 페이퍼랩은 별도의 전용 세절기에서 이면지를 잘게 자르고, 이를 업사이클링 기기에 넣는 방식이다. 업사이클링 기기가 한 대만 있어도 전용 세절기 여러 대를 필요한 곳에 배치하면 재생 효율성을 대폭 높일 수 있다. 종이 재활용을 보다 간편하게 만들어 많은 사람이 친환경 실천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뉴 페이퍼랩은 구형 모델보다 낮은 가격으로 출시된다. 한국 출시는 미정이지만 이른 시일 내에 한국엡손 사무실에 데모 제품을 들여와 전시할 예정이다. 엡손 관계자는 “페이퍼랩은 경제성이 아닌 환경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제품”이라며 “기업, 기관에서 환경 경영 성과를 부각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이동 중’은 핑계고, 기자가 직접 체험한 모든 것을 씁니다.
시오지리(일본)=이동수 기자 d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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