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외국인 학생 등록 취소를 볼모 삼아 아이비리그 하버드대 ‘길들이기’를 시도했다. 미 국토안보부는 다른 대학 유학생의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EVP) 등록도 취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판부는 지난 23일(현지시간) SEVP 인증 취소 효력을 중단해달라는 하버드대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지만, 유학생을 겨냥한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국인 학생 등록 취소가 현실화하면 미국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떠안게 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역 흑자와 내수 활성화를 공약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상충하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학생이 줄면 연구 성과 감소, 인재 확보 부진, 대학가 지역 경제 침체 등 광범위한 분야에 타격이 갈 것으로 관측했다.
미 국무부 교육문화국과 국제교육연구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4 국제 교육 교류 보고서’에 따르면 2023-2024학년도에 재학(2023년 가을학기 등록) 중인 미국 대학 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112만6690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이전 학년도보다 7% 증가한 수치다.
같은 시기 편·입학을 통해 미 대학에 새로 등록한 유학생 수는 29만8705명으로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국적별로는 인도(33만1602명) 출신 유학생이 가장 많았다. 이어 중국(27만7398명), 한국(4만3149명), 캐나다(2만8998명) 순으로 많았다.
전체 유학생 56%는 유망 학업인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를 전공했다.
국무부 교육문화국은 보고서 결과를 발표하며 “미국 유학 경험은 개인 삶의 미래뿐만 아니라 상호 연결된 세상의 미래를 만든다”며 “미국 학생과 유학생 사이에 형성되는 유대감은 사업·무역, 과학·혁신, 정부 관계의 기반이 된다”고 밝혔다.
행정부가 실제로 하버드대 SEVP 등록을 취소하면 전체 학생 중 27%를 차지하는 수많은 유학생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 국립교육통계센터는 하버드대에 2024·2025학년도 기준 140여개국 출신 6800명의 유학생이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유학생은 미국 내수 활성화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미국 비영리 교육단체 국제교육자협회(NAFSA)는 지난해 11월 낸 보고서에서 2023-2024학년도 기준 외국인 유학생이 등록금과 주거비, 생활비 등을 포함해 연간 미국에 약 430억달러(약 59조원) 규모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 것으로 집계했다.
유학생이 내는 학비는 미국의 무역 수지를 ‘흑자’로 끌어올리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 경제분석국은 2023년 고등교육 서비스 산업이 미국 주요 수출 품목 10위권 안에 든다고 밝혔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미국은 천연가스와 석탄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의 교육 서비스를 전 세계에 팔았다”며 “이 부문에서는 막대한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지난달 전했다.
유학생의 소비는 미국 내 일자리도 대거 창출하고 있다. NAFSA는 2023-2024학년도 유학생으로 인해 37만8175개의 일자리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바넷 셔먼 보스턴대 다국적 금융·무역학 교수는 더컨버세이션 기고에서 “이는 소매점이나 식당 직원 등 유학생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업체 일자리만 계산한 것”이라며 “유통센터 직원처럼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일자리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교육을 자양분 삼아 창업한 외국인 기업가가 현지에서 수많은 일자리를 만든 사례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는 캐나다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로 편입해 경제학·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는 전기차 제조 기업 테슬라와 우주 장비 제조업체 스페이스X 등을 미국에서 설립했다. 독일 출신 자베드 카림 유튜브 공동설립자(일리노이대·스탠퍼드대)와 대만 출신 젠슨 황 엔비디아 설립자(오리건주립대·스탠퍼드대)도 외국인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서 학업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