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란의 하버드…美학생도 "유학생 금지? 완전히 미친 짓" [르포]

2025-05-28

“유학생을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보는 것 아닌가요? 그들의 정치적 싸움을 위해 쓰이는 포커 카드로 대한다는 기분이 듭니다.”

27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파키스탄 유학생 우스만(가명)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거듭되는 외국인 유학생 단속 강화 정책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하버드대 교정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졸업식을 앞두고 관례에 따라 진행하는 리허설 행사가 한창이었다. 검정 가운을 입은 졸업생과 하버드대를 상징하는 짙은 붉은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가족 등이 와이드너 도서관 계단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느라 바빴다.

무거운 분위기 속 졸업식 리허설

하지만 캠퍼스를 감싼 전체적 분위기는 여느 해와 다르게 유난히 무거웠다. ‘반(反)유대주의 근절’에 협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하버드를 정조준한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초강경수를 거듭하면서 학생들 사이에 긴장감과 불안감이 퍼져 있기 때문인 듯했다. 이날은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와 체결한 연방 정부 차원의 계약 해지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총 1억 달러(약 1370억 원)로 추산되는 각종 연구용역계약 등을 끊어 자금줄을 옥죄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법원 판결로 하루 만에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하버드대 외국인 학생 등록을 취소하는 강경책을 시도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버드에 유학생 명단과 국적 공개를 요구하고 30억 달러(약 4조1000억 원)에 달하는 보조금 회수를 검토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27일 캠퍼스에서 만난 하버드대 유학생들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기분”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이름이나 얼굴이 미디어에 노출될 경우 유학생 비자 신분 등에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며 약속이나 한 듯 익명을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美에 기여하는데 왜 추방 못해 안달”

중국인 유학생 주징(가명)은 “하버드에 올 때 고국에 있는 모든 기회를 포기하고 왔다”며 “그런 우리를 돌아가라 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했다. 졸업 후 미국 내 한 IT 기업의 데이터 연구원 일자리를 얻었다는 그는 “트럼프는 미국 학생들이 수학 공부를 안 해 2+2라는 간단한 셈도 못한다고 했는데 저는 2+2를 계산할 수 없다는 미국인들을 돕는 일을 할 것이다”며 “미국에 남아 미국에 기여를 하는 유학생들을 왜 내쫓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하버드대 학부를 졸업하는 박민규(가명)씨는 “처음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단순히 겁주려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갈수록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공격 강도가 높아지니 많은 이들이 겁을 먹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유학을 원하는 학생들의 소셜미디어 심사를 의무화하고 이를 준비할 때까지 유학생 비자 인터뷰 중단을 지시했다는 언론 보도가 전해졌다. 홍콩 출신의 하버드대 학부생 제시카(가명)는 “팔레스타인 공격을 멈추라고 요구하면 ‘반이스라엘’이란 딱지를 붙이고 이름과 국적을 공개하라고 겁박한다”며 “최악의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했다.

“연구 프로젝트 올스톱 될 수도”

유학생 단속 강화 정책의 여파는 외국인 학생뿐만 아니라 미국 시민권을 가진 내국인에게도 갈수록 크게 미치고 있다. 의학대학원을 졸업하는 미국인 니콜라스(가명)는 “제 연구실 동료 상당수가 외국인 학생인데 그들이 비자 문제로 미국을 떠나면 지금까지 해오던 뼈 재생, 외상 회복과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들은 올스톱되고 만다”며 “유학생 문제는 모두에게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줄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미 하버드에 대한 정부 보조금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는 연구실이 많다. 전에 없었던 대혼란의 시기”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경영대학원 졸업생인 미국인 브래디(가명)는 “석사를 마친 뒤 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외국인 친구 중 상당수가 트럼프 행정부 때문에 미국 대신 영국 등 유럽으로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하버드에서 유학생을 금지하는 건 잘못이다.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유학생 없으면 케네디스쿨도 없다”

특히 유학생 비율이 60%에 육박하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공공정책대학원)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외국인 학생 유학 자격 박탈 시도에 정체성이 흔들리는 위기감이 퍼졌다고 한다. 케네디스쿨에서 국제개발 행정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마니쉬(가명)는 “미국에서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완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하버드 전체 또는 미국에 유학 온 외국인 누구에게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케네디스쿨의 커리큘럼 상당수는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 진입을 앞둔 과도기 국가의 지도자 양성을 위한 펠로우십 프로그램이어서 외국인 등록 비율이 특히 높다. 국제개발학 석사 과정에는 전체 학생의 87%가 외국 출신이다. 벨기에의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엘리자베스 공주도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을 공부하고 있다. 케네디스쿨 졸업생 데이비스는 “외국인 유학생은 케네디스쿨의 절대적인 중심”이라며 “유학생이 없으면 케네디스쿨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진보 색채가 강한 하버드 특유의 학풍에 대한 내부 구성원의 경계감도 없지는 않았다. 케네디스쿨 졸업생인 한국인 유학생 유종모(가명)씨는 “친팔레스타인을 넘어 지나치게 반이스라엘 경향을 띠는 일부 학생들의 강경한 움직임이 트럼프의 반감을 사고 강경책을 유발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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