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문 협정, 기존 무역 전략에서 크게 벗어난 것...호주 전철 밟을 수도"
"英 라벨 규정 약해, 중국산 제품 영국 통해 면세로 인도로 유입될 수 있어"
[방콕=뉴스핌] 홍우리 특파원 = 인도와 영국이 3년 협상 끝에 무역 협정을 체결한 가운데, 이것이 인도의 제조업을 약화시키고 향후의 무역 협상에 불리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6일(현지 시간) 인도 비즈니스 월드에 따르면, 델리 소재 글로벌 무역 연구 이니셔티브(GTRI)는 인도와 영국 간 무역 협정이 시장 접근성을 크게 제고했지만 자동차·제약 등 인도의 핵심 산업에는 불리할 수 있다며, 이들 산업이 장기적인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인도와 영국은 이달 6일 주요 수출품의 대규모 관세 인하를 골자로 하는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상품·서비스·디지털 거래·지식재산권·정부 조달 등 26개 분야의 무역 자유화가 목표다.
영국은 인도에서 수입하는 의류·신발·냉동 새우·보석류에 물리는 관세를 인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인도는 섬유·신발·해산물·자동차 등 약 60억 달러(약 8조 2000억원) 상당의 상품을 영국에 면세로 수출할 수 있게 됐지만 석유 제품·의약품·다이아몬드 등 약 75억 달러에 달하는 인도의 수출품은 이미 영국에 면세로 수출되고 있어 새로운 협정의 혜택을 볼 수 없다.
반면 영국은 상당한 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는 영국산 제품에 부과하던 관세 품목 중 90%를 인하하고, 이 중 85%에 대해서는 향후 10년 내 완전히 무관세(0%)로 전환하기로 했다.
특히 인도로 수입되는 영국 자동차 관세가 할당량 내에서 기존의 100%에서 10%로 대폭 낮아지면서 인도 자동차 업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GTRI는 지적했다.
기관은 "인도가 할당량 내에서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대폭 낮추기로 한 것은 기존 무역 전략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라며 면세 대상에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가 포함되는 것이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이나 한국·유럽연합(EU) 등 다른 무역 파트너들이 향후 비슷한 양보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문은 인도 제조업 국내총생산(GDP)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400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제공한다.
GTRI는 "수입을 너무 빠른 속도로 자유화하면 인도 국내 자동차 산업이 호주와 같은 상황을 겪을 수 있다"며 호주 자동차 산업이 공격적인 관세 인하 이후 20년 만에 붕괴했다고 언급했다.
GTRI는 인도가 영국산 의료기기에 대한 관세 철폐에 합의한 데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영국의 라벨 규정이 제품이 영국에서 '포장'만 된 경우에도 '메이드 인 UK(Made in UK)'로 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나 EU와 같은 제3국 제품이 영국을 우회해 면세로 인도에 들어올 수 있다며 우려했다.
이와 함께 인도가 영국에 60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중앙 정부 조달 시장에 상당한 접근성을 제공한 것 역시 인도의 역량 약화로 이어지고 미국이나 EU와의 무역 협정 협상에서 유사한 요구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겼고,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 협정(TRIPS)'을 뛰어넘는 지식 재산권 규칙에 합의한 것은 인도의 저가 제네릭 의약품 생산 능력 및 제약품 주권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GTRI는 "인도와 영국 간 무역 협정은 장기적으로 (인도의) 경제적 자율성을 위협한다. 인도는 협정에서 관세·규제·공공 정책에 대한 통제력을 지나치게 많이 포기하고 있다"며 EU, 미국과의 협상에 불리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hongwoori8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