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서울 시민 된 주한 美 대사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4-12-27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5월20일 임기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방한 일정을 누구보다 앞장서 챙겨야 할 주한 미국 대사가 보이지 않았다. 실은 2021년 1월20일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1년 4개월 넘게 주한 대사 자리가 공석으로 있었다.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해리 해리스 대사가 정권교체와 더불어 귀국한 뒤 새 주한 대사가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세계에서 독일, 일본 다음으로 많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의 중요성이 떨어져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주한 대사의 직무를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여겨 외교관들이 한국 근무를 꺼린 탓이었다.

해리스 전 대사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듬해인 2018년 7월 한국에 부임했다. 미 해군 4성제독 출신으로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까지 지낸 그는 역대 주한 대사 중 가장 화려한 배경을 지닌 인사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그만큼 한국을 중시하는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정작 해리스 전 대사는 국내에서 푸대접을 받았다. 몇몇 반미 성향의 여당 의원과 시민단체들은 그가 일본계 미국인이란 점을 문제삼았다. 심지어 콧수염을 기르는 개인적 취향까지 트집을 잡으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총독을 보는 듯하다’는 식의 인신 공격을 가했다. 훗날 해리스 전 대사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 일을 거론하며 섭섭함을 표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임명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대사는 직전에 콜롬비아 근무를 마치고 2022년 7월 한국에 왔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정부는 이전 문재인정부와 달리 한·미 동맹과 대미 외교를 중시하는 정책을 폈다. 자연히 골드버그 대사는 전임자보다 훨씬 좋은 여건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야구 팬인 그는 한국 프로야구 경기장을 찾아 치맥을 즐기며 게임을 관람하는가 하면 서울 전통시장을 방문해 야식을 맛보는 등 소탈한 행보로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23년 4월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것은 대사 임기 중 최고의 업적으로 꼽힌다.

오는 1월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맞춰 한국을 떠날 예정인 골드버그 대사에게 12·3 비상계엄 사태는 악몽이나 다름없었을 게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약간 아쉬움과 슬픔도 가지고 이임하게 됐다”며 “21세기에 상상하기 어려운 비민주적 상황이 벌어졌다”고 말한 것에서 그의 심경을 읽을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6일 골드버그 대사를 명예 서울시민으로 선정해 명예 시민증을 수여한 것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 서울에서 생활한 2년 6개월 남짓한 기간 중 기뻤던 일만 소중하게 간직하고 2024년 12월3일 밤의 기억은 그만 잊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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