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하나로 충분했다, 130분간 내리 28곡 부른 가왕 조용필

2024-11-24

“안녕하시죠? 저도 안녕합니다. 근래 들어 자주 뵙는 것 같아 좋습니다. 저를 아직 ‘오빠’라고 그럽니까?”

가왕 조용필(74)이 쏟아지는 관객들의 함성에 미소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개최한 ‘20집 발매 기념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서울’ 첫 공연에서다.

지난달 22일 11년 만의 정규 음반 ‘20’을 발매한 조용필은 한 달 만에 전국 투어로 다시 팬들을 찾았다. 공연은 서울, 대구, 부산 등으로 이어진다. 전국 투어의 시작인 서울 콘서트는 24일과 30일, 12월 1일까지 총 4회차로 마련됐다. 회당 약 8500명씩 총 3만4000명의 관객들과 마주할 예정이다.

첫날 공연에서 조용필은 빠른 비트와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아시아의 불꽃'으로 포문을 열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는 간단한 인사 후엔 ‘자존심’, ‘물망초’, ‘나는 너 좋아’, ‘그대를 사랑해’를 연달아 노래했다.

오프닝 공연 후엔 “같이 놀기 위해 빠른 노래들을 많이 준비했다. 운동하는 셈 치고 같이 노래 불러보자. 여러분 노래가 힘이 된다”며 화이팅을 외친 뒤 입고 있던 버건디 색 자켓을 벗었다. 꽃 무늬 검은 셔츠에 검정 슬랙스, 그리고 하얀 운동화. 이날 조용필이 입은 유일한 의상이었다.

의상 만큼 무대도 단출했다. 돌출 무대나 리프트가 없는 일자형으로, 조용필의 양 옆에는 밴드 위대한탄생과 코러스가 위치했다. 조용필은 2시간 여의 러닝타임 동안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잠깐의 시간 외엔 단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음악 만으로 가득 채운 공연이었지만, 잠시도 지루하지 않았다.

조명이 달린 원형 구조물과 초대형 화면을 설치했고, 기타 사운드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한 조명 연출로 볼거리를 제공했다. 대형 스피커 4대는 쉴 새 없이 웅장한 사운드를 뿜어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를 땐 집채만 한 파도가 화면을 가득 채웠고, ‘미지의 세계’는 우주 배경과 어우러졌다. ‘모나리자’에선 원형 구조물이 블랙홀 같은 눈동자로 변하기도 했다.

조용필은 간드러지는 미성과 힘있는 고음, 날카로운 박자감의 내레이션으로 이 노래들을 소화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보컬은 70대 중반의 나이를 무색케 했다. 게스트 한 명 없이 홀로 내달리는 그의 열정에 객석 곳곳에서 "역시 가왕"이란 감탄이 터져 나왔다. 조용필은 박수 갈채를 보내는 관객들에게 "내 나이 때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라고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정규 20집 타이틀곡 ‘그래도 돼’를 노래할 땐 배우 박근형, 이솜 등이 출연한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왔다. 황혼의 주인공이 인생의 소중한 추억들을 회상하는 내용이었다. '이제는 믿어 믿어봐 / 자신을 믿어 믿어봐 / 지금이야 그때'라는 가사가 묵묵히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헌사처럼 들렸다.

20집으로 정규 앨범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조용필은 “스무 번째 앨범을 냈다. 아쉽게도 끝났으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어 솔로 데뷔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비롯해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킬리만자로의 표범', '못찾겠다 꾀꼬리', '청춘시대' , '모나리자', '여행을 떠나요' 등의 히트곡들을 부르며 객석을 달아오르게 했다.

자연스레 객석에선 떼창이 이어졌다. '단발머리'를 따라 부르는 중년 여성 관객들은 40여년 전 '그 소녀'로 돌아간 듯 했다. 이 모습에 조용필은 "좋아요!"라고 화답했다. 그는 관객의 노랫소리를 듣기 위해 인이어를 빼거나 떼창에 맞춰 고음 애드리브를 넣는 등 팬과 함께 하는 무대를 즐겼다.

‘남겨진 자의 고독’, ‘기다리는 아픔’을 부를 땐 “내 노래 중에 남자들이 부를 노래가 몇 개 있다. 노래방이라 생각하고 적극 참여 바란다”며 남성 관객의 가창을 유도했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부를 때는 “이게 내 노래인데 다른 사람이 불러서 내 곡이 아닌 줄 아는 사람이 많다. 내 곡이 맞다”고 말해 웃음을 이끌었다.

‘여행을 떠나요’로 마무리한 2시간의 본 공연 이후엔 앙코르가 이어졌다. ‘추억 속의 재회’, ‘꿈’에 이어 2013년 전국을 들썩이게 한 ‘바운스’까지 세 곡을 소화한 조용필은 공연장 여기저기를 향해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관객들에 손을 흔든 뒤 무대를 내려왔다. 군더더기 없는 마무리까지 앙코르 포함 130분 동안 28곡으로 꽉 채운 가왕다운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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