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농담] 바이브 코딩, 세상을 채운 느낌적인 느낌

2025-03-25

세상이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그럴싸한 ‘느낌’으로 가득한 것 같다. 공익광고는 가까이 다가서 보면 생성된 이미지인 ‘듯 보인다.’ 외신 보도를 소개하는 언론사는 인공지능 번역기를 돌린 '듯 보인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고전 강독 강의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은 ‘듯 보인다.’ 이를 비난할 수 있는가 고민하던 차에, 강사는 그럴싸한 목소리로 고전의 원문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내용을 읊는다. 인공지능의 환각(hallucination)을 표정 변화도 없이 또박또박 소리 내어 전하는 그를 보며 두려움을 느낀 나는 ‘올드 스쿨’인가.

학문 공동체가 생성형 인공지능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인터뷰한 연구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어떤 젊은 철학자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자신의 철학적 사유의 일부라고 말했다. 자신의 ‘철학함’은 인공지능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궁금해진 연구자는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전기가 끊기면 철학을 못 하나요?” 젊은 철학자는 “그렇다”고 답했다. 읽고 산책하다가 나무등걸에 앉아 사색하는 것이 철학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나만큼이나 ‘올드 스쿨’이다.

마음은 한껏 확장되어 나의 육체를 넘어 주변 환경을 활용한다. 인간의 인지 활동은 종이, 연필, 책, 컴퓨터 등 다양한 도구들을 동원한다. 막대기를 쥐고 있는 사람은 막대기까지를 자기 신체의 일부처럼 가눌 수 있는 것처럼, 인지 활동 역시 외부 요소들을 동원해 효율적으로 인지적 과제를 수행한다. 효율적일 뿐이랴. 때로는 외부 도구 없이는 인지 활동이 불가능한 의존적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외부 자원은 인지 활동의 일부가 되고, 나와 외부 자원은 결합된 체계를 이룬다. 이를 확장된 마음 이론(Theory of extended mind)이라 부른다.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고 흙에 글을 썼을 때도 인간의 마음은 확장되어 있었다. 그러니 인공지능과 결합한 철학함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언젠가 나 역시 근시안적이고 편협한 사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인공지능의 산파술이 걱정되는 까닭은 인공지능이 그 자체로서 정치적 결과물이며, 아직 우리는 이 기술의 목적과 기능에 대한 민주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인공지능이 그럴듯해 보인다는 ‘느낌적인 느낌’만 갖고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을 코딩의 보조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인공지능이 출력한 결과물을 부주의하게 따다 쓰는 것을 지칭하는 신조어,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 유행이다. 코드의 내용을 이해할 필요 없이, 인공지능과의 대화 결과 나온 출력물을 느낌 가는 대로 따다 코딩한다. 뿐이랴. ‘바이브 광고’, ‘바이브 강의’, ‘바이브 보도’ 등 세상에 ‘느낌’이 흘러넘친다. 이 칼럼이 인공지능이 생성한 ‘바이브 칼럼’이 아니라는 사실은 또 어찌 알겠는가. 인공지능 시대의 초입에 이르렀을 뿐인데, 무어라 설명하기도 따지기도 힘든 이유로 진정성에 대한 깊은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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