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인간과 AGI의 차이

2025-03-25

미국 대학원에서는 사례연구를 중시한다. 의사결정 사안에 대한 메모를 보통 1쪽 내로 작성해 제출하고 이를 토론하는 식이다. 맨 앞에 결론이나 제안을 쓰고 그 뒤에 배경이나 근거를 둬 이해를 돕는다. 소위 ‘핵심전치’라고 부르는 방식인데 비즈니스나 외교·안보 분야의 효율적 의사소통 방식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이런 연역적 논리의 흐름은 상사의 입장에서 빠르게 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한국의 정부나 기업에서는 정반대의 논리적 흐름을 담고 있다. 배경이나 상황 분석을 먼저하고 문제를 규정한 다음 평가와 분석을 한 후 제안과 결론으로 가는 흐름을 따른다. 귀납적 핵심후치인 셈이다. 맥락을 중시하고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접근법이다. 상사에게 결재판을 들이대면서 대뜸 자기주장을 할 수 없는 조직문화가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더욱 엄정하게 이 논리의 흐름을 따르고 있어서 이런 흐름이 꼭 동양권 문화만의 특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에서 서류 작성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고 보고서는 간단히 만들어 보자는 시도가 없었던 직장은 없었을 것이다. 동양식은 맥락을 중시하는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설득 과정은 신중하게 진행해야 하므로 자연히 길어지고 중복 설명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국제적인 경향과는 거리가 있다. 미국 백악관에서는 2쪽이 넘는 메모나 서류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들었다.

논리적 흐름에서 미국식의 피라미드 구조와 한국식의 귀납적 구조가 대조적이라고 할 때 보고서 작성을 인공지능(AI)에 시키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독일·일본·중국식의 논리적 흐름이 있다고 할 때 과연 어느 정도 정교하게 이를 반영하는 맥락 접근법을 학습시킬 수 있을까. 이미 AI를 개발하는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재스퍼 AI와 챗GPT 등에서 인공일반지능(AGI)은 바로 이런 차원으로 본격 진출할 것이다. AGI가 보편화된다면 이 문화나 논리적 흐름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뤄서 문화권만이 아니고 개별 인간 차원의 깊고 오묘한 경지를 제대로 반영하면서 일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이나 조직에 세계적 표준으로 나아가라고 하면서 글로벌 논리적 흐름이라는 새 경지를 들이댈 텐가.

전문가들은 둘 다 할 수 있다고 할 것 같다. 아니, 어디 두 가지 방향만 있겠는가. AGI는 인류 역사상 처음 보는 논리적 흐름과 문화적 맥락도 능히 고려할 수 있다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려하는 것은 글로벌 차원에서 한 방향으로 융합 혹은 수렴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미 다수 문화권의 젊은 세대에는 피라미드 방식이 유행하고 있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간다면 문화는 AI에 지배당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사고의 흐름은 시대나 문화권 안에서도 천차만별이다. 맹자와 순자를 비교해 보면 분명해진다. 맹자는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하면 누구든 저절로 구하려는 마음이 생긴다’하면서 귀납적 논리의 흐름을 갖고 성선설을 주장한다. 2000년 넘게 가슴에 와닿았다. 하지만 순자는 다르다. 사상적 원리를 먼저 제기하고 그에 따라 문제를 분석한 다음 악한 인간을 제도하기 위한 규범을 강조한다. 대조적이다. AGI가 원리나 논리적 흐름으로는 인간을 능가할 것 같다. 하지만 ‘물가의 어린이’와 같은 비유의 정수를 창안해 낼 수 있을까. 주체적으로 감정 반응까지 시도하는 것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영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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