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시대에는 나라의 흥망성쇠가 미우나 고우나 왕과 일부 측근들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좌지우지됐다. 백성들의 삶과 의지는 그들의 이익과 뜻에 따라 정해지고 내세우는 민심도 정치적 유불리에 의해 천심도 되고 저항도 됐다. 세종과 같은 성군 시대나 암군과 폭군의 시대에도 그들을 구심점으로 나라가 돌아갔다.
한 곳으로 끌어당긴다는 의미로 쓰이는 구심점은 현상이나 사상 외에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사람이면 국가나 사회 구성원의 이념과 사상을 대동(大同)으로 이끄는 정신적 지주로 모든 이들에게 존경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나 ‘돌격 앞으로’식 정책, 주먹구구식 장미빛 희망고문으로는 자격이 없다는 얘기다.
국민을 정신적으로 하나로 묶을 강력한 구심점을 가진 나라는 품격이 달라진다. 그 역할과 기능도 유효기간이 상당히 오래간다.
예전부터 자주 들은 말이 있다. ‘우리나라는 백범 김구 이후 구심점이 없다’며 한탄하는 소리다. 백범의 사상, 독립운동, 나라를 위한 마음이 당시 사람들에게 너무도 강렬했기에 어느정도 고개가 끄덕여졌던 기억이 있다. 이념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요즘은 이런 말을 하면 욕을 먹기 십상일 테다.
사람마다 생각과 추구하는 가치, 명분이 다르지만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딸 때의 박수와 함성, 월드컵 4강신화 때 모두가 얼싸안고 ‘대한민국’을 외치던 기억으로 양극화와 불공정, 경제난으로 지쳐가는 나라를 양보와 타협, 배려로 살아갈 만한 무언가를 찾아야 할 때인 것은 분명하다.
중국 국부(國父)인 쑨원(孫文)은 대만과 중국 국민들이 모두 존경하고 사랑하는 20세기 대표적 인물이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건국한 뒤 삼민주의(민족·민주·민생)로 중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제와 변화를 이끄는 기초를 확립했다. 혁명은 국민주의와 자주성으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됐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도에는 비폭력 저항의 상징인 마하트마 간디가 있다. 영국의 지배로 억압받는 국민들 앞에서 평생을 진리와 자유, 양심을 위해 투쟁해 끝내 독립으로 이끌었다. 비폭력과 자기실현, 철저한 자기 수양으로 지금도 인도는 물론 세계적으로 존경받고 있는 몇 안되는 성자다.
우리에게도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 있다. 당파싸움과 군주의 철저한 무능으로 나라를 빼앗긴 일제때도 항일을 위해 목숨을 던지며 고군분투한 안중근 의사와 같은 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었다.
그런데 이후에는 ‘이 사람이다’라고 딱히 떠오르는 이가 없다. 분야가 다양해지고 개방화로 생각과 이념도 양극으로 나뉘면서 공감에 대한 평가와 잣대가 다르다는 이유 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감정이나 주입도 끼어들 수 없는 영역이다.
대통령은 건국 이후 13명이지만 망명과 시해, 유배, 수감, 탄핵 등으로 말년이 불운한 이들이 많았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봉사가 아닌 권력이 먼저였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불행이다. 이대로라면 국민 통합은 물론이고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백년대계 마련도 어려워진다.
니편 내편으로 나뉘어 반대의 명분만 찾는 지금의 세태에서 모두를 하나로 모을 인물이나 동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주위에는 극단적 이념 대립과 계급·계층 갈등으로 분열을 넘어 찢겨질 지경에 이른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말로만 통합을 외치지 말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하나라도 정신적 동질성을 가지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토로한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 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일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굳이 사람이 아니라도 될 일이다.
인도 뉴델리 야무나 공원에는 간디가 말한 7가지 악덕이 새겨진 대리석이 있다. 철학없는 정치, 도덕없는 경제, 노동없는 부, 인격없는 교육, 인간성없는 과학, 윤리없는 쾌락, 헌신없는 종교. 나만 우리 사회가 한없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건가.
2025년을 앞두고 비상계엄 사태가 나라 전체를 덮고 있다. 국민을 보호하고 희망을 줘도 모자랄 연말연시에 국민을 불안케하고 나라를 나락으로 밀어넣는 정치꾼들을 보면서 구심점 부재가 안타까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