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2 명태균 도처에 있다…'여론조사 왜곡' 손 본다

2024-10-20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이하 여심위)가 ‘명태균 의혹’으로 불붙은 불공정 여론조사 문제를 손보기 위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것으로 20일 파악됐다.

여심위는 지난 16일 여심위 등록 여론조사업체 58곳에 ‘여론조사 제도개선(안)’을 보냈다. 여론조사 사전신고 의무대상에 모든 인터넷 언론사를 포함하는 게 핵심이다. 공직선거법 108조에 따르면 여론조사를 하려면 조사 2일 전 여심위에 목적·지역·방법·설문내용 등을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예외조항에 따라 정당·방송사·신문사·뉴스통신사 및 인터넷언론(전년도 말 3개월간 일일 평균 이용자 수 10만명 이상)은 면제돼왔다.

명태균 의혹으로 일부 여론조사업체와 지역 인터넷 언론이 유착돼 여론조사를 조작한다는 의혹이 커지자 여심위가 칼을 빼 든 것이다. 명씨는 2021년 국민의힘 대선 경선 당시 자신이 대표 겸 편집국장으로 있는 경남 창원 지역 인터넷 언론 ‘시사경남’ 등의 의뢰로 여론조사를 돌렸고, 이를 통해 사전신고 대상에서 빠져나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여심위에 따르면 지난 4월 22대 총선 때 등록된 여론조사 2531건 중 1524건(60.2%)이 사전 신고를 면제받았다. 명씨처럼 제도를 악용한 사례가 또 있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조사계획을 미리 신고하지 않으면 조작이 더 쉽다”며 “처벌 수위가 낮다 보니 조작 기법도 날로 늘고 있다”고 했다.

① 조사대상 왜곡하는 ‘쿠킹’

대표적인 조작수법은 업계에서 ‘쿠킹’ 혹은 ‘섞는다’라고 표현하는 조사대상 왜곡이다. 여론조사업체는 조사 전 여심위 허가 하에 통신사로부터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의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받는다. 무작위이기 때문에 특정 사안에 대한 응답을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기에 사전에 확보한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섞으면 얘기는 달라진다. 특정 응답을 요구할 수 있는 가족·지인 명의의 전화번호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는 번호를 조사대상에 추가하는 식이다.

실제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대구 지역의 한 여론조사업체는 자체 보유한 휴대전화 1523개를 가상번호 2만5000개와 섞는 방식으로 조사대상을 왜곡했다가 적발돼 업체 대표가 1심에서 벌금 700만원 형을 받았다. 같은 시기 경남 창원에서도 자체 휴대전화 6만6474개로 여론조사를 돌린 업체 대표가 1심에서 벌금 300만원 형을 받았다.

한 여론조사전문가는 “쿠킹이 의심되면 여심위가 조사 원자료를 살펴보지만, 자료 보존 기간이 6개월이라 적발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② 질문 유도

여론조사 직전 특정 응답을 얻기 위해 질문을 유도하는 것도 조작 기법의 하나다.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구체적인 응답을 요구하거나, 성별과 지역 등을 속이라고 유도하는 식이다.

2022년 6·1 지방선거에 출마한 김광열 영덕군수 측은 국민의힘 영덕군수 경선 여론조사를 앞두고 카카오톡 대화방을 만들었다. 캠프 관계자들은 여기서 “50·60 여성으로 해주세요”라는 식의 요구를 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김 군수는 지난 5월 대법원에서 벌금 90만원이 최종 확정돼 군수직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시기 민주당 전북 장수군수 경선에서는 장영수 전 장수군수 측이 타 지역 주민의 휴대전화 요금 청구지를 장수군으로 바꾸는 식으로 여론조사를 조작해 지난해 5월 2심에서 징역형을 받았다.

③응답 부풀리는 ‘마사지’

여론조사에서 성별·연령·지역 등 계층별 응답률이 고르지 않을 때 적용되는 가중값도 결과 왜곡에 활용된다. 선관위는 가중값을 0.7~1.5%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를 과도하게 부여하는 식이다.

예컨대 60대 이상 혹은 대구·경북 지역에 가중값을 1.5%보다 더 많이 부여하면 실제 응답자보다 과다표집돼 보수 진영에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반대로 2030대에 가중값을 높게 부여하면 특정 팬덤이 있는 정치인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뉴스토마토’가 최근 공개한 2021년 국민의힘 대선 경선 당시 녹취록에서 명씨가 “젊은 애들 응답하는 계수를 올려서 2~3% 홍(준표 후보)보다 (윤석열 후보가) 더 나오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가중값 조작과 관계있다는 관측이 있다.

여심위원을 지낸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조작·왜곡한 여론조사업체는 엄벌에 처해 업계에서 퇴출해야 자정이 가능하다”며 “특히 지역 소규모 언론과 유착하는 명태균씨 의혹 같은 사례는 강도 높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론조사업체도 ‘네편 내편’ 나뉜다…“정당 이익 대변”

여론조사 업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의혹이 여론조사 신뢰도에 타격을 주고 있다.

국민의힘은 10·16 재보궐 선거 다음 날 친야 성향 유튜버인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여론조사꽃’을 정조준했다. 한동훈 대표는 1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를 언급하며 “여론조사꽃에서 선거 며칠 전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를 이기는 결과를 냈다. 국민의힘이 이기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결과였다”며 “어떤 방향의 여론조사를 만들어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선거 결과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표가 언급한 여론조사는 지난 11일 여론조사꽃의 조사 결과로 야권 단일 후보인 김경지 더불어민주당 후보 지지율이 40.9%로 국민의힘 윤일현 후보(37.7%)를 오차범위 안에서 앞섰다. 하지만 투표 결과 윤 후보 득표율이 61.0%로 김 후보(38.9%)를 22.1% 포인트 차이로 크게 앞섰다. 여론조사꽃은 22대 총선에서도 서울 도봉갑과 부산 해운대갑, 경기 성남분당갑 등 주요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가 앞서는 여론조사를 발표했지만, 이들 지역에서 국민의힘 후보들이 당선되면서 편향성 논란을 촉발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은 ‘명태균 의혹’을 두고 2022년 대선 당시 명씨 측 의뢰로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14일 “명씨가 여론조사 업체 PNR을 통해 50차례 조사를 했는데, 당시 윤석열 후보가 1위로 나온 결과가 49번”이라며 “다른 업체가 실시한 조사에선 이 대표와 윤 대통령이 엎치락뒤치락했는데, 명씨가 여론조사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에선 명씨의 미래한국연구소가 의뢰하고 PNR이 시행한 조사를 두고 “국민의힘 사설 업체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기관을 둘러싼 정치권의 ‘네편 내편’ 공방이 일반 시민들이 특정 여론조사 업체가 편향됐다고 인지하면 실제로 결과도 그쪽으로 쏠린다는 ‘하우스 이팩트’ 효과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여론조사 업체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던 A씨는 “정치 커뮤니티나 SNS를 보면 ‘여론조사꽃과 윈지컨설팅은 우리 편, PNR은 남의 편’이라고 낙인 찍으면서 응답을 거절하거나 혹은 독려하고 있다”며 “정치적인 낙인이 찍히면 아무리 설계를 잘하더라도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해당 업체들이 발표한 여론조사 모두 사전 신고부터 사후 결과 등록까지 절차를 준수하고 검증도 거쳤기 때문에 당장 문제로 삼을 순 없다는 입장이다. 여심위 관계자는 “결과에 다양한 요인이 미치겠지만, 정치적 성향을 갖는 조사 기관에 대한 응답자의 인식과 참여 정도가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동원 폴리컴 대표는 “여론조사가 여론을 보여주는 거울이 아니라 여론을 이끄는 ‘밴드웨건 효과’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며 “특정 정파와 가깝다는 낙인이 당장은 돈이 될 수 있지만 결국은 여론조사 업계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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