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바다의 보물 ‘김’ 둘둘…감칠맛·영양의 결정체

2025-03-10

냉동김밥이 미국 대형마트에서 품절됐다는 뉴스가 처음 나온 게 벌써 2년 전이다. 인기는 계속돼 냉동김밥을 비롯한 쌀 가공식품 수출액이 2024년엔 전년 대비 38.4% 뛰며 농식품 수출 품목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처음부터 해조류를 좋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요오드와 같은 할로겐 화합물이 풍기는 향 때문이다. 강한 바다향 또는 약품 같은 냄새를 풍기는 홍조류의 맛을 사랑하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김은 다르다. 다양한 휘발성 황화합물이 균형 잡힌 향기를 낸다. 김을 구우면 발효차의 향이 퍼지며 후각을 자극한다.

김은 조간대(밀물 때는 잠기고 썰물 때는 드러나는 해안 지형)의 바위에서 자라기 때문에 바닷물에 잠겼다 공기 중에 노출되기를 반복하며 당·아미노산·타우린·베타인과 같은 영양물질을 축적한다. 감칠맛을 내는 대표적 성분은 흔히 엠에스지(MSG)로 알려진 글루탐산, 핵산계 조미료로 불리는 이노신산(IMP)·구아닐산(GMP) 이렇게 세가지다. 김에는 글루탐산·이노신산·구아닐산이 모두 들어 있다. 그야말로 감칠맛의 결정체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김을 맛보면 바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은 영양 면에서도 훌륭하다. 마른 김에는 단백질이 42%, 탄수화물이 36%나 들어 있다. 비타민과 미네랄 같은 미량영양소도 풍부하다. 바다에서 자라는 김의 미네랄 함량은 토양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육상식물보다 10배 더 많다. 김은 베타카로틴·비타민C·비타민E뿐만 아니라 채식을 주로 하는 사람에게 결핍되기 쉬운 비타민B와 철분,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다는 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김에는 다른 해조류보다 적긴 해도 결핍을 막기에 충분한 양의 요오드도 들어 있다.

최근에는 김에 풍부한 다당류 성분인 포피란의 기능성 효과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포피란은 김 속 세포와 세포 사이를 채우고 있는 물질로 썰물 때 김이 살아남도록 보호해준다. 김은 조수 간만의 차가 비교적 큰 해안가에서 주로 서식한다. 밀물 때는 짜디짠 바닷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하고, 썰물 때는 자외선과 공기에 그대로 노출되는 가혹한 환경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분을 최대 95%까지 잃어버릴 정도로 환경 변화가 급격하다. 포피란은 수분을 붙잡아 김 세포가 말라붙지 않도록 하며, 세포벽의 유연성을 유지해 김이 밀물과 썰물의 양극단에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이 성분이 사람의 장속에 들어오면 식이섬유로 작용해 암 발병을 줄이고 면역 조절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찬가지로 썰물 때 자외선에 노출돼 받는 산화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김 속의 다양한 항산화물질 또한 인체에 유익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밥만큼 김의 영양과 맛을 즐기기 좋은 음식도 없다. 서울 성동구 금호사거리에 있는 ‘금호김밥’은 기본에 충실하다. 겉으로 보기엔 속 재료를 꽉 채워넣고 밥을 줄인 최근 트렌드에 맞춘 김밥처럼 보이지만 입에 넣으면 1990년대 유행하던 옛 김밥이 생각난다. ‘신동진’ 쌀로 지은 밥에 매일 삶아내는 국산 시금치를 넣었으니 그럴 수밖에. 시금치 대신 부추가 들어가는 요즘 김밥에 질린 사람이라면 가볍게 한번 들를 만하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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