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리포트] '학교' 넘어선 K-학원물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까닭

2025-02-26

[비즈한국] KBS 예능 ‘개그콘서트’에는 학교 소재의 개그가 끊어진 적이 없다. 특히 ‘봉숭아 학당’은 불사조처럼 이어져왔다. 예능 ‘아는 형님’은 교실을 배경으로 장수 프로그램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웹소설이나 웹툰에도 학원물이 대세를 이루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 OTT에서도 드라마 ‘스터디 그룹’이나 ‘선의의 경쟁’, ‘하트스테인’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렇게 학교를 소재나 공간으로 삼은 콘텐츠가 많은 것은 보편성 때문이다. 학창 시절을 겪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세대를 막론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국내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보편적인 문화 경험재라고 할 수 있다. 학교 문화 경험재는 학교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관련 콘텐츠 상품이 소비되는 현상이다.

그런데 특히나 요즘 한국 학원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이를 파악하려면 이전의 학원물 드라마와 다른 점을 봐야 할 것이다. ​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시리즈 가운데 대표는 1999년부터 2021년까지 방영된 KBS의 ‘학교’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공익적 역할과 대중적인 관심으로 눈길을 끈 데다 신인 연기자를 발굴해 스타로 발돋움시키는 등용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청자나 대중의 주목도가 떨어졌는데, 청소년 드라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의 드라마였기에 소재는 물론이고 표현 방식이나 수위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 시리즈가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지상파 드라마의 한계를 상징한다. 그 한계를 돌파한 것이 글로벌 OTT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2022년 1월 공개되어 91개국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소재를 학교 폭력과 계급, 계층 문제와 접목해 K-좀비물의 신기원을 열었다. 이어 그해 12월 공개된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에 좀 더 초점을 맞춰 본격적인 복수극을 선보여 2주 연속 글로벌 2위를 차지했다. 이 드라마의 영향이 얼마나 컸던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학교 폭력문제를 공론화했다.

이후 학원 소재 드라마는 다양하게 분화하기 시작했다. 2023년 학원 액션 누아르를 표방한 ‘소년시대’는 복고적인 코드에 기반하면서 학교 폭력을 지역 사투리와 버무려 액션과 코믹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2024년 ‘피라미드 게임’은 ‘더 글로리’에서 보여준 계급, 계층이 학교 폭력을 얼마나 더 교묘하게 재생산하고 확대하는지, 개미지옥 같은 게임 방식을 통해 구현했다.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에서는 학교 폭력에 대응하는 타격감 넘치는 응징이 눈에 띄는데, 약한 고등학생에게 조폭이 빙의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아냈다.

2025년 ‘스터디 그룹’에서는 학교 폭력에 개인적인 복수를 펼쳐 보이는 것을 넘어, 교사와 학생들이 공부 모임을 통해서 점차 바뀌어 가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그려냈다. ‘선의의 경쟁’에서는 의대 입시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두 주인공을 통해 한국 사회의 계층적 입시 경쟁을 미묘한 심리극 관점에서 형상화했다. 그리고 ‘하트스테인’에서는 드디어 BL 코드를 적용해 교사와 학생 간의 삼각관계를 펼쳐 보였다.

때로는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많아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묶이기도 하지만 학교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K-학원물은 입지를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 학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하거나 불편해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그런 우려와 불편함은 잊어도 된다. 그러한 점들은 한국 사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그린 계층 간의 갈등이나 양극화는 오히려 북미나 서유럽 선진국이 더욱 심하다. 세계인들이 ‘기생충’을 본 것은 한국 사회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기생충’을 통해 계층 이야기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K-학원물을 바라보는 세계인들 역시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몰입할 뿐이다.

한편으로 학원물이 정작 학생들을 소외시킨다는 말도 있다. 학생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다만 학교는 집단생활을 해야 하기에 인간관계와 조직, 사회 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간 세상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의 문제를 투영하기에 알맞다.

학교를 지나치게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앞으로도 K-학원물은 끊임없이 진화, 분화할 것이다. 현실의 화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대중적인 희망이나 대안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K 콘텐츠가 글로벌 OTT 환경에서 주목받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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