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현의 테크와 사람] 〈86〉갈등을 중재하는 AI

2025-10-16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사실관계를 규명해 가해자에게 적절한 처분을 하고 피해자와 학부모가 육체적, 정신적 회복을 하기까지 막대한 비용이 들게 된다. 여기서 비용은 꼭 재정적 비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학교가 감당해야 하는 정서적, 시간적 비용까지 모두 포함한다. 만약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법정 소송까지 가게될 경우 당사자 모두가 고통의 심연으로 더 빠져들게 된다.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적 절차 속에서 오히려 어른들의 싸움이 격해지고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는 모습을 우리는 점점 더 자주 목격하고 있다. 최근 한 인공지능(AI) 기술 전시회를 방문했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분쟁이 일어날 때 많은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학교와 교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AI 업무지원 솔루션을 보았다. 학폭 당사자들의 진술서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대목을 찾아내고, 교사와 학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하는 모습에서 AI가 점점 더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음을 느꼈다. 관련 법제와 판례까지 AI가 검토해 주는 동안 교사와 학교는 당사자의 고통을 치유하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솔루션이었다. 향후 학생이나 학부모를 돕기 위한 솔루션까지 추가된다면 학폭으로 인한 다자간의 고통이 다소 경감되지 않을까 기대해 보게 된다. 해외에서는 교육용 플랫폼에서 온라인 따돌림(사이버불링), 자해 신호 등을 탐지하는 AI모델을 적용해 교사에게 잠재적 문제를 조기에 알려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이베이와 같은 온라인 거래 플랫폼에서는 연간 수백만건의 거래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기업들은 자동화된 협상 시스템을 통해 거래 당사자들이 온라인에서 비대면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 과정을 모두 사람에게 맡길 경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북미와 유럽의 일부 법원에서는 소액 분쟁에 대응하는 데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갈등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사례들이다.

2015년 대만 정부가 시작한 브이타이완(vTaiwan)이라는 디지털 민주주의 프로젝트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시민의 의견이 자유롭고 효율적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제공한다. 여기 사용된 AI 기반 시민 참여 플랫폼이 바로 폴아이에스(Pol.is)인데, 논쟁에서 감정적 대립을 줄이고, 다수가 공감하는 '쌍방(교차) 합의 문장'을 찾아내 정책을 설계할 때 공통 분모로 삼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온라인 토론방을 구성할 때 댓글-반박 방식이 아닌 제안에 대한 무기명 토론과 투표가 이뤄지도록 하고 데이터의 실시간 군집·시각화를 통해 개인의 의견이 타인의 의견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했다. 대표적인 성과로 대만에서 우버를 도입할 때, 기존 택시산업과의 상생 요소를 포함한 것을 들 수 있다.

인간의 부정적 감정이 여과없이 쏟아지기 쉬운 곳으로는 고객상담센터(콜센터)를 들 수 있다. 최근 일부 AI는 콜센터로 걸려온 고객의 음성에서 피치, 속도, 톤, 침묵 길이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스트레스나 분노 신호를 감지하면 상담원 화면에 시각적으로 알려준다. 또 첨단 딥러닝 모델을 사용해 음성의 감정 상태를 분노, 불안, 만족 등 6~8가지 범주로 즉시 분류해 내고, 대화가 부정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미리 예측해 상담원에게 “공감 표현을 사용하십시오” 또는 “말하는 속도를 더 늦추십시오” 같은 구체적 조언을 하게 된다.

요컨대 인간의 갈등 상황에도 AI는 차츰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갈등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기가 막막해질 때가 많은데, AI가 해결책을 조언하는 시대가 마침내 다가온 것이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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