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선친 ‘차명 유산’을 돌려달라며 누나 재훈 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최근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이 전 회장이 누나에게서 돌려받을 돈은 153억여 원으로 1심에서 인정한 400억 원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지난 9일 이호진 전 회장이 누나 이재훈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양측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이로써 재훈 씨가 이 전 회장에게 153억 5000만 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이 확정됐다. 앞서 2심 재판부는 재훈 씨가 이 전 회장에게 400억 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는 1심 판결 일부를 취소하며 이같이 판결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재훈 씨의 유언 무효 주장에 대해 “원심 판결에 유언의 해석과 효력, 집행행위와 관련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배상 금액을 더 내놓으라는 이 전 회장 측 주장에도 “원심 판결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판단누락, 이유불비, 석명의무 위반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물리쳤다.
양측 분쟁은 선친 고 이임용 선대 회장이 1996년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언에서 시작됐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재산은 딸들을 제외한 아내와 아들들에게 상속하되, 나머지 재산이 있으면 이기화 전 회장 뜻에 따라 처리한다’는 취지의 유언이었다. 고 이기화 전 회장은 두 남매의 외삼촌으로, 고 이임용 회장의 유언집행자로 지정돼 상속 재산 처리를 관장했다.
문제는 상속재산으로 열거되지 않은 ‘나머지 재산’이었다. 재산 상속이 개시된 이후인 2010년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와 2011년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이임용 선대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하던 주식과 채권이 발견됐다. 이 무렵 일가의 차명재산을 관리하던 이 전 회장 어머니는 재훈 씨에게 차명 채권을 전달했다. 이호진 전 회장이 2012년 이 채권의 반환을 요청했지만 재훈 씨는 응하지 않았다.
이호진 전 회장은 자신의 상속 유산을 돌려달라며 2020년 소송을 제기했다. ‘나머지 재산’ 처리 규정에 따라 아버지 소유 차명 채권을 아들인 자신이 단독으로 상속했고, 이를 점유보조자인 어머니를 통해 재훈 씨에게 맡겼는데 반환하지 않아 손해를 배상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반면 재훈 씨는 유언이 아버지의 독립 의사가 아니라 유언집행자의 뜻에 따르게 해 ‘일신전속성’에 반하므로 무효라고 맞섰다.
1심은 2023년 재훈 씨가 이 전 회장에게 40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나머지 재산 관련 유언은 이 선대 회장이 일부 유언 내용의 결정을 이기화 전 회장에게 아무런 제한 없이 위임한 것으로, 유언의 일신전속성에 반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이 선대 회장 작고 이후 어머니를 통해 차명 채권을 실질적으로 점유·관리했고, 상속권 침해 이의제기 기간(10년)에 관련 이의 신청이 없어 이 전 회장이 이를 적법하게 상속했다고 봤다.
2심은 앞선 판결 일부를 취소하고 재훈 씨가 이 전 회장에게 153억 5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이 재판부는 1심처럼 차명 채권과 관련한 이 전 회장의 소유권을 인정했지만, 인정 배경과 손해배상 금액을 달리 봤다. 이 선대 회장 유언에서 나머지 재산을 규정한 부분은 일신전속성에 반하지 않아 유효하고, 이 전 회장은 차명 채권을 유언 집행행위로 정당하게 취득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다만 배상 금액은 400억 원이 아니라 증거로 확인되는 부분만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채권증서의 금액이 153억 5000만 원을 초과해 400억 원에 이른다는 점이 증명됐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앞서 차명 채권을 관리하던 어머니는 재훈 씨에게 내용증명으로 차명 채권 반환을 요구하면서 ‘액면금액 합계가 400억 원인 채권 증서’를 반환할 것을 요청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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