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의 진상이 담긴 ‘블랙박스’···풀어야 할 의문점 세 가지

2024-12-30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조사가 30일 첫 발을 뗐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 당일 여객기에서 수거한 비행자료기록장치(FDR)와 조종실음성기록장치(CVR)를 수거해 이날 김포공항 시험분석센터로 이송한 상태다. FDR 외관이 일부 훼손된 상태라, 데이터 추출 가능 여부부터 판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비행기 내 ‘블랙박스’로 불리는 FDR과 CVR에는 버드 스트라이크(조류충돌)가 언제 일어났는지, 랜딩 기어(비행기 바퀴)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조종사가 왜 다급한 착륙을 시도했는지 등 참사 원인을 알 수 있는 핵심 정보가 모두 담겨있다. 국토부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 내용을 기반으로 FDR·CVR로 규명해야 할 의문점을 정리했다.

왜 활주로 중간에 내렸나

엔진 고장 등으로 정상 착륙이 어려운 상황이 되면 조종사는 ‘복행(고 어라운드)’을 결정한다. 조종사가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적으로는 관제탑 상한고도(상공 5000피트)까지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충분한 정비 시간을 가진 뒤 예정된 활주로를 다시 진입하거나, 착륙이 가능한 다른 공항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사고 여객기(제주항공 2216편)는 원래 들어오려던 활주로(01활주로)의 반대 방향(19활주로)으로 들어오는 방식의 복행을 시도했다. 총 길이 39.47m의 여객기 선회 반경을 고려하면 활주로에 정상적으로 접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터치다운(접지) 지점도 무안공항 활주로 전체 2800m의 중간 지점을 넘은 1200m로 확인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권장 터치다운 지점(400m)보다 훨씬 더 멀리에서 접지를 하다보니 동체를 세울만한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이라고 말했다.

조종사가 왜 ‘짧은 복행’을 감행했는지는 FDR와 CVR 등을 분석해야만 정확히 알 수 있다. 김건환 민간조종사협회 법률위원장은 “활주로의 반대 방향으로 짧게 돌아 들어오는 것이 일반적인 대응은 아니지만 잘못된 대응이라고 할 수도 없다”며 “조종사 판단이 적절했는지는 사고 조사 결과를 봐야지만 알 수 있다”고 했다.

랜딩 기어를 포함한 감속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이유도 FDR과 CVR를 분석해야만 정확히 알 수 있다. 사고 직전 여객기 영상을 본 전문가들은 날개의 일부분을 접어서 공기 저항으로 감속하는 ‘스피드 브레이크’, 출력 방향을 반대로 돌려 제동을 거는 ‘엔진 역추진’ 모두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정윤식 경운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통상 엔진 두 개 중 하나만 작동해도 문제없이 날수 있지만, 엔진 두 개가 모두 작동이 안 되면 조종사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유압계가 작동하지 않으니 랜딩기어도 못내리고 플랩(스피드 브레이크의 일종)도 못 쓰고 할 수 있는건 동체 착륙 뿐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압계(비행기를 움직이게 하는 시스템)가 완전히 꺼져버리는 최악의 상황이라면 수동으로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랜딩기어를 수동으로 내리는 데는 1분30초, 플랩은 10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은 고도로 복행하기조차 어려운 다급한 상황에서 조종사가 이를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김인규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장은 “조종사가 장치를 가동하려고 시동했으면 설령 기계 결함 때문에 작동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시도 자체가 기록에 남는다”라며 “블랙박스를 열어봐야 기계 결함 여부를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제주항공의 무리한 운항 스케줄이 기능 저하와 결함을 불렀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항공기 운항 주기는 규정화가 잘 되어있고, 정비 규칙대로 정비가 이뤄지는지도 정부에서 감독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 감독 범위 내에서의 정상 운영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참사 하루 만에 동일 기종의 제조항공 여객기(보잉737-800)가 랜딩기어 이상으로 회항하는 사건이 벌어진 만큼, 기체 결함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체착륙은 랜딩기어 등이 내려오지 않았을 때 몸통(belly)으로 착륙하는 방식으로, 조종사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 중 하나다.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이 항공사에 제공하는 비상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동체착륙을 시도하기 전 연료를 최대한 소모할 것을 권고한다. 비행기가 가벼울수록 착륙 속도를 줄일 수 있어서다.

다만 사고 여객기 기종은 연료를 밖으로 내보내는 배유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비행 중 허용 중량을 넘으면 연료를 배출하도록 하는 기능이 있지만, 사고 여객기 내 연료가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FDR로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동체착륙 직전 마찰열을 줄여줄 냉각거품 등이 설치되지 않은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조류 충돌로 ‘메이데이(항공기 구조신호)’를 선언한 조종사가 관제탑에 구체적으로 어떤 요청을 했는지도 FDR 등으로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다만 국토부 관계자는 “거품이 오히려 기체 감속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있어 현재 규정에서는 삭제된 상태”라며 “배리어같은 감속 유도 구조물도 민항공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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