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엮어낸 연대의 마음···‘뜨개 투쟁’을 아시나요

2025-05-19

‘탄핵뜨개’ 작가는 지난해 12·3 불법계엄 사태 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바늘을 잡았다. 탄핵을 촉구하는 광장에서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이 가는 피켓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탄핵 뜨개’ 작가가 만든 ‘내란 수괴 처벌하라’ 뜨개질 도안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널리 퍼졌다. 이에 공감하는 여성들은 각자의 실과 바늘로 ‘뜨개 피켓’을 만들고 광장에서도 뜨개질을 함께했다. 이들의 바느질에 ‘뜨개 투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난 17일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선 ‘광장에 나온 뜨개’ 전시가 열렸다. 탄핵 광장에 나온 시민·활동가 10명이 각자의 뜨개 물품을 전시하는 자리였다. 이들은 ‘반드시 처벌받는다’, ‘성범죄 OUT’ 등 저마다의 염원을 담은 문구를 한 땀 한 땀 떴다. 19일 만난 시민·활동가들은 “뜨개와 투쟁은 닮았다”고 말했다.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 가원씨는 탄핵 광장을 거치며 촛불 모양 인형을 만들었다. ‘뜨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면 시민들이 하나둘 다가와 말을 걸었다. 가원씨는 “뜨개로 실을 연결하듯 사람들도 연결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장에서는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데 그건 ‘뜨개인’들이 잘하는 일 중 하나”라며 “탄핵까지의 시간과 추위를 버티는 마음으로 뜨개질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뜨개질은 투쟁과 다르지 않았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활동가 솔지씨는 “뜨개질은 고리타분하고 비효율적 취미로 여겨지지만 사실 투쟁도 느리게 진행되는 것”이라며 “오랜 시간과 마음을 들여 만들어낸 결과물은 더 울림이 크듯 뜨개질은 그 자체로 저항의 의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뜨개 초보’라고 소개한 솔지씨는 등허리를 뒤덮는 커다란 털실 가방을 만들어 전시했다. 주홍색 털실과 흰색 털실이 얽힌 가방에는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라는 글씨를 새겼다.

여성들은 한 코 한 코 느리게 편물을 떠내려가면 변화가 더딘 세상을 버틸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전시에 참여한 쥬쥬베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뜨개 피켓을 만드는 것은 염원을 기도하는 마음과 닮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마음이 모인 광장 뜨개는 분명 힘이 있다”고 했다. 활동가 김경희씨는 “투쟁 활동을 하다 보면 마음이 힘들 때가 많은데 천천히 뜨개질하며 스스로 돌보는 분들도 많다”며 “다양한 실이 엮어 하나의 면이 되듯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싸우다 보면 더 선명한 민주주의로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뜨개질은 지금도 계속된다. 김씨는 지난 17일에도 여성들과 모여 뜨개질을 했다. 김씨의 말을 따라 조심조심 실을 꿰어낸 이들이 떠낸 편물을 바라봤다. “쉽지 않네” 중얼거리면서도 개운한 미소가 참여자들의 입가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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