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관세 명목 ‘똑같은 빵’ 다른 값에 팔아
어렵게 만들어낸 자유무역 질서 무너뜨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커다란 판을 들고 국가별 관세 ‘폭탄’ 목록을 소개하는 장면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설명하는 종업원 같기도 했고, 아니면 성적표를 들고 부모님께 자랑하는 어린이 같기도 했다. 불행히도 트럼프가 소개하는 내용은 맛있는 음식도 아니고 시험의 결과도 아니었다. 세계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며 어두운 그림자를 미래에 드리우는 멍청한 광기의 정책이었다.
트럼프 도표의 제목은 정확하게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라고 적혀 있었다. 상호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좋은 의미다. 서로 호의적인 태도로 대한다는 암묵적 뜻이 담겨 있고, 더 나아가 평등하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대를 죽이고 박살 내려고 벌이는 싸움을 ‘상호 공격’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트럼프가 주도하는 미국의 관세 정책은 상호적이기는커녕 매우 일방적이고 부당하며, 주관적인 판단에 기초한 폭력적 정책일 뿐이다.
언론에서 상호 관세라고 따라부르는 행태는 중립적인 보도가 아니라 트럼프의 ‘정책 사기(詐欺)’에 공범이 되는 셈이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트럼프가 소개한 관세는 ‘차별 관세’다. 똑같은 상품이라도 어느 나라에서 수입되는가에 따라 다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약품이라도 중국산은 34%, 유럽연합산은 20%, 그리고 영국산은 10%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의미다.
국가가 정하는 대외정책이니 해당 국가에 따라 차별화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실제 역사적으로 19세기에는 이런 국가별 관세가 유행했다. 그러나 지구촌의 엄청난 번영을 일궈낸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의 원칙은 지난 150여년간 차별을 없애고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자동차라는 하나의 상품이라면 어느 나라에서 생산했건 같은 세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원칙이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다. 그것은 관세를 부과한다는 측면에서 완벽한 자유무역은 아닐지라도 생산국에 따른 차별은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트럼프가 들고나온 미국의 관세 정책은 마치 빵집의 주인이 똑같은 샌드위치를 손님에 따라 다른 가격으로 팔겠다는 모양새다.
제도와 경제발전의 상호관계를 연구한 미국의 애브너 그라이프 교수는 시장경제의 기본을 익명(Impersonal) 교환이라고 파악했다. 그는 경제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똑같이 대우하여 같은 가격을 적용하는 전통을 꼽았다. 예를 들어 중국이나 인도, 아랍 세계도 모두 상업 문화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친족이나 동족, 동포, 동향의 네트워크에 의존했기에 한계가 명확했다.
반면 중세 유럽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같은 대우와 보호를 받는 개방적 시장을 만들었기에 점차 문화적 범위를 넘어 광범위한 시장을 도출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트럼프가 정말 위험한 이유는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온 다양한 제도와 구조를 하나씩 차근차근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벌인 비극적 코미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렵게 만들어낸 자유무역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누구에게나 개방하여 같은 상품을 같은 가격에 거래한다는 시장경제의 원칙조차 부정하는 전통 파괴의 상징적 연출이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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