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관세 직격탄 맞은 美가정

2025-04-06

트럼프의 막무가내 상호관세로

美 유통 외국 식료품 가격 급등

설상가상으로 유가도 뛰어 시름

이 고통을 기쁘게 견딜 수 있을까

주말 동안 한국마트에서 장을 봤다. 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발표 후 5일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제품에 10% 관세가 부과됐다. 9일이면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이른바 ‘무역 불공정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물품들에 상호관세가 부과된다. 캘리포니아산 김치처럼 미국에서 만드는 한국식품도 있지만 미국 한국마트에 있는 대부분의 물건들은 한국에서 수입되는 것들이다. 그간 약간의 운송비를 낸다고 생각하고 한국보다 조금 비싼 수준으로 미국에서 한국 식품을 먹을 수 있었지만 관세가 물가에 반영되는 시점부터 현재 가격에서 25%가 상승한다. 한국마트에 가 보면 손님이 한국인만도 아니다. 한류, 글로벌화의 영향으로 다양한 인종의 미국인이 한국마트에 와서 물건을 사고 있다.

한국 음식을 안 먹으면 관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현지 마트에 가 보니 절대 아니다. 식품을 넘어 미국의 문화로 자리매김한 커피는 소량이 하와이에서 생산되는 것을 제외하곤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미국인들이 자주 먹는 초콜릿 가공품 누텔라는 이탈리아, 독일 등에서 생산된다. 주식으로 자주 소비되는 파스타는 대부분 이탈리아 브랜드다. 미국 소비분은 현지 생산을 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오늘 들여다보니 ‘일부 원료 수입’이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 가정에서 흔하게 먹는 생선인 연어는 일부가 알래스카에서 잡히지만 칠레산, 노르웨이산, 캐나다산이 함께 유통되기 때문에 현재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 미국에서 유통되는 마늘은 대부분 중국, 바나나와 아보카도는 멕시코, 새우는 동남아시아에서 온다. 올리브유도 일부 캘리포니아산을 제외하고 대부분 그리스, 스페인 등에서 수입된다. 미국산만으로 식사를 하려면 미국산 소고기로 만든 햄버거와 토마토 케첩을 뿌린 감자튀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저스틴 울퍼 미시간대 경제학 교수는 이번주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당신의 삶은 절대로 관세 부과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는 기존의 소비 패턴을 멈추고, 다시 계산해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인들이 신선한 채소 대신 냉동 채소, 설탕 대신 옥수수 시럽, 비싼 수입 의약품 대신 덜 효과적인 국내 생산 약 등으로 소비를 재편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2018년 트럼프 1기에서 비교적 온건한 관세 조치로 세탁기 가격이 거의 100달러 상승했고, 당시 많은 가정이 기존 세탁기 교체를 포기했다. 울퍼 교수는 관세의 총비용은 소비자들이 더 지출한 돈을 넘어 오래된 세탁기의 소음, 세탁 후에도 젖은 상태로 남아 있는 옷, 증가한 전기 및 수도 요금도 포함이라고 했다. 이번엔 비슷한 일이 미국 가정에서 자동차 등 더 큰 규모의 소비에도 확대될 것이다. 일부 도시 지역을 제외하고 차가 없으면 근처 마트도 가기 어렵고 대중교통도 잘 되어 있지 않은 대부분의 미국 주거지에서 자동차는 필수재나 다름 없다. 관세 충격으로 계속 오르고 있는 유가는 덤이다.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앞집 이웃 알레시아를 만나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소감을 물었더니 “물가는 오를 것이니 준비해야 한다”며 체념한 듯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신뢰를 보여주던 그는 최근 좀 혼란에 빠진 듯하다. 그는 관세정책과 소비자물가에 대해 “한번 보자”며 유보적으로 말했지만 예전 같은 신뢰는 아니었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가장 큰 이유는 불법이민자 이슈였지 관세정책은 아니었다. 대선 취재 당시 만난 많은 미국인들이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시기의 인플레이션을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로 들었다. 그들은 트럼프 대통령 주장대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잠시의 고통”을 기쁘게 견딜 수 있을까.

트럼프발 세계무역 지각변동이 결국 미국을 어디로 가게 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당장 오늘 고통 받는 것은 각 미국 가계라는 점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물망처럼 엮인 세계에서 이 사태는 모두에게 영향을 줄 것이지만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평범한 미국인들이다.

홍주형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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