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계란 갖고도 싸웠다"…美서민부터 때린 트럼프 관세

2025-04-0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10%의 보편관세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 4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코스트코를 찾은 소비자들은 경쟁하듯 화장지를 카트에 담았다. 산더미같이 쌓아둔 화장지가 순식간에 동이 나자 지게차는 연신 화장지를 실어날랐다.

30개들이 두루마리 휴지 3개와 키친타월 4개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마샤 페레스는 “솔직히 당장 필요해서 산 게 아니다”라며 “관세로 물건값이 올라갈 텐데 팬데믹 때 화장지 1롤 당 10달러가 넘었던 게 기억나서 조기 퇴근해서 일단 화장지부터 샀다”고 했다.

계란 판매대엔 ‘판매량을 3개로 제한한다’는 문구가 붙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동반자 수대로 계란을 3개씩 나눠 들며 확보 경쟁을 벌였다. 이를 지켜보던 모니카 고는 “오히려 오늘은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라며 “어제만 해도 긴 줄을 서서 서로 계란을 달라고 몸싸움을 벌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차도 바꿀 때가 됐는데 할인 행사도 끝나서 기회를 놓쳤다”며 “솔직히 뭘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의 카트에도 어김없이 화장지가 담겨 있었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으로 3일부터 미국인의 필수품인 자동차에 25%의 관세가 붙기 시작했다. 5일부터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관세가, 9일부터는 한국을 비롯한 ‘최악의 침해국(worst offenders)’에 적용되는 초고율의 관세가 부과된다. 특히 세계의 공장 중국에 기존 관세 20%에 상호관세 34%를 더한 54%, 또 다른 공장 베트남엔 46%의 관세가 예고되면서 미국 소비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충격파는 미국의 저소득층부터 강타했다. 빈 카트를 끌고 오랫동안 TV 가격표를 바라보던 홀리 뉴먼은 “TV가 오래돼 바꿔야 하는데 돈이 없다”며 “사람들이 TV 가격이 오를 거라고 해서 나오긴 했는데, 비싼 이자를 주고 또 대출할 수도 없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기자에게 상당수 가전의 원산지가 고관세가 붙는 중국과 베트남이라는 말을 들은 그는 “트럼프가 나라를 죽이고, 나 같은 사람을 죽일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는 빈손으로 매장을 빠져나갔다.

관세가 저소득층에 더 큰 고통이 되는 이유는 역(逆) 누진성 때문이다. 관세는 모든 상품에 똑같이 반영된다. 소득이 낮을수록 체감하는 가격 상승효과가 크다는 뜻이다. 부자에게 10달러는 적은 돈일 수 있지만 저소득층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관세 때문에 저소득층의 가처분 소득이 고소득층보다 크게 떨어질 거라는 구체적인 분석도 나왔다. 2일 공개된 예일대 예산 연구소(Yale Budget Lab)의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의 효과를 반영한 미국 소득 2분위(하위 소득 10~20%)의 올해 가처분 소득은 1723달러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소득이 가장 높은 10분위의 8101달러에 비하면 적다.

그러나 현재 소득에 비례한 가처분 소득의 감소 비율로 비교할 경우 2분위의 감소폭은 4%로, 10분위의 감소폭 1.6%보다 2.5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가 부족해 데이터를 내지 못한 최하위 1분위 구간과 비교할 경우 비율은 더 커질 수 있다.

관세로 인한 양극화에 대한 불만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반발로 이어지고 있었다. 월마트에서 만난 샘 윌슨은 “트럼프 정부에게 화가 나는 것은 모든 부담과 책임을 미국인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특히 모든 정책이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세금을 줄이고 그들이 더 잘 살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더 화가 난다”고 말했다.

특히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가 공공부문의 대규모 인원 감축을 주도하면서 ‘부자 정부’ 이미지를 강화하고 반발을 키운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사 리우는 “워싱턴 인근에는 정부 기관에 종사하거나 정부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내 남편도 머스크 때문에 일방적으로 해고됐고, 정부 쪽에 취직하려던 아들도 취직이 안 돼 내 파트타임 월급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서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은 관세 발표를 기점으로 미국 시장 전체가 한꺼번에 휘청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로 10년간 6조 달러(약 8769조원)의 세수를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지만, 지난 2일 상호관세 발표 이후 불과 이틀간 뉴욕 증시의 시가총액은 6조 6000억 달러(약 9645조원) 줄어들었다. 특히 미국의 경제의 ‘체력’으로 불려온 애플, 엔비디아, 테슬라 등 7개 기술 기업의 시가총액만 1조 8000억 달러(약 2630조원) 날아갔다.

그러자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는 이날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포인트 낮춘 -0.3%로 조정했다. 당초 1.3% 성장할 거란 전망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순식간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는 얘기다. JP모건은 특히 ‘트럼프발 관세’로 인해 전 세계가 침체에 빠질 확률이 기존의 40%에서 60%로 급격히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확대된 불안감은 대규모 군중 시위로 이어졌다. 이날 하루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에 반대하는 시위가 미국 50개 주 전체와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미국 내에서만 60만 명 이상이 참가 등록을 했고, 곳곳에 ‘손을 떼라(Hands Off)’라는 구호가 내걸렸다.

그럼에도 상호관세 발표 직후인 지난 3일 플로리다 골프장으로 직행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이것(관세)은 경제 혁명이며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며 “굳세게 버텨라. 쉽지 않겠지만 최종 결과는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적었다. 다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플로리다로 가는 기내 간담회에서 “머스크도 떠나야 할 시점이 올 것”이라며 머스크와의 결별 가능성을 시사한 상태다.

그럼에도 그저 “버티라”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WSJ의 4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6%로 1월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관세 정책에 대한 반대는 54%로 나타났다. 이는 1월(48%)에 비해 크게 높아진 수치로, 특히 응답자의 4분의 3은 관세 때문에 장바구니 물가가 올라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론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공화당은 내홍에 휩싸일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테드 크루즈 텍사스 상원의원은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미국이 경기침체를 겪고, 국민이 큰 고통을 겪는다면 유권자들은 여당을 처벌할 것”이라며 “특히 심각한 불황이 올 경우 중간선거는 대참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스테판 슈미트 아이오와 주립대 교수는 “지난해 트럼프가 당선된 원동력은 바이든의 물가 정책에 실망한 노동자와 소수인종의 표심이 상당 부분 유입됐기 때문”이라며 “만약 인플레이션 우려 등과 관련한 현재의 여론 흐름을 바꾸지 못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 역시 물가 때문에 바이든 전 대통령과 같은 공격을 받는 입장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